국내 투자자들이 인도와 베트남 등 신흥국 펀드에서 돈을 빼고 있다. 국내 증시가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자 신흥국 증시 자금을 국내 주식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 인도 펀드에서 1200억원 유출
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인도와 베트남 등 증시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인도 펀드 상품에선 최근 3개월간 1205억원이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가 가장 큰 상품은 ‘TIGER 인도니프티50’ 상장지수펀드(ETF)로 집계됐다. 이 기간 479억원이 유출됐다. 마찬가지로 ETF인 ‘TIGER 인도레버리지’에서 295억원, ‘KODEX 인도Nifty50레버리지’에서 109억원이 빠졌다. 공모펀드 중에서는 ‘피델리티 인디아증권자투자신탁’(-114억원), ‘미래에셋 인도중소형포커스증권자투자신탁’(-98억원) 등에서 설정액 순감이 나타났다.
베트남 펀드에선 같은 기간 428억원이 유출됐다. ‘한화 베트남레전드증권자투자신탁’(-95억원), ‘한국투자 베트남그로스증권자투자신탁’(-87억원) 등의 투자자금 감소가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신흥아시아(-135억원)와 브라질(-18억원)에서도 투자자금 회수가 나타났다.
반면 미국, 유럽, 중국 시장으로는 투자금이 유입됐다. 미국 펀드에는 최근 들어 달러 약세 등의 영향으로 주춤하지만, 지난 3개월간 총 2조910억원이 들어온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펀드에는 1733억원, 유럽에는 309억원이 들어왔다.
◇ “밸류에이션 과하다” 평가도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인도·베트남 등 신흥국에 배분한 자금을 일부 국내 증시로 옮기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새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 등에 힘입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매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최근 3개월간 22.7%로 인도 센섹스30지수(10.1%), 베트남 VN지수(5.1%) 상승률을 압도했다. 김근아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많은 투자자가 전체 포트폴리오의 일정 비중을 여러 신흥국에 나눠 투자하는데, 최근 3개월간 중국과 한국 증시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도 등 다른 시장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도 증시는 만성적인 ‘고평가 리스크’가 신흥국 가운데 가장 많은 자금 이탈을 부추긴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인도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 수준이다. 인도 증시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지만, 미국 증시 PER과 비슷한 현재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발생한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투자자들의 외면을 불렀다.
◇ 관세협상 타결로 이익 실현 기회
증권가에선 인도와 베트남 증시의 최근 상승 흐름이 국내 투자자의 추가 이익 실현을 자극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두 나라는 최근 미국 정부와의 상호관세 협상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에 비교적 안정적인 상승 흐름을 나타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베트남 제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율을 기존 46%에서 20%로 조정한다는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후 VN지수는 장중 1392.39까지 치솟았다. 2022년 4월 이후 3년여 만의 최고치다. 인도도 미국과의 협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 밖에 인도 정부는 금리 인하, 재정 지출 확대, 소비 촉진 등 다양한 부양 정책을 펼치고 있다.
증권가는 폭스콘, 애플, AMD 등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생산시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김 애널리스트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우호적으로 마무리되면 인도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제조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며 “경제와 증시에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