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갑생 교수, 美국립공문서관서 222쪽 분량 발견… 동북아역사재단 기증
1948년 6월 미군 폭탄에 어민 사상… ‘독도폭격사건 문서철’에 담겨
1946년 ‘독도 영유 확인’ 공문서도
“1945∼1948년 영토주권 희귀 사료”
동북아역사재단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한 1948년 ‘독도폭격사건 문서철’에서 ‘1947년 9월 리앙쿠르 암(독도)은 한국의 일부임이 명확히 확립돼 있다(definitely established in September 1947 that Liancourt Rocks was a part of Korea)’고 미군이 인정한 기록이 발견됐다”고 7일 밝혔다. 1947년 9월은 미 극동군 총사령관이 독도를 폭격 연습지로 승인한 시점이다.
● ‘독도=한국령’이 미국의 일관된 입장
보고서는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원래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던 미군은 폭격 연습 때마다 반드시 주한미군사령부에 사전 통지하도록 했는데, 제5공군이 절차를 어긴 탓에 한국인들이 조업을 하다 피해를 당했다는 분석이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은 “이 문서는 외부에 보이기 위해 생산한 게 아니라 내부용 기밀문서”라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일관되게 ‘독도는 한국의 영토’란 입장을 확립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 울릉군수 “‘독도는 한국령’ 공표해야”
1906년 대한제국 울도군수 심흥택이 독도를 ‘본군소속(本郡所屬)’으로 명시한 ‘심흥택 군수 보고서’의 필사본(1946년)도 나왔다. 이 필사본은 지금까지 알려졌던 1947년 울릉도청 보관본보다 1년 빠르다. 울릉도민 홍재현이 1947년 8월 20일 남조선과도정부 외무처 일본과장에게 제출한 독도 어업 증언 문서(홍재현 진술서)도 1947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사본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 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서 수집
총 222쪽 분량인 자료는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정부 수립 전후 미군 문서를 폭넓게 조사하다가 NARA 산하 메릴랜드주 소재 국립공문서관 2관 2층 문서실에서 발견했다. 냉전 연구자인 전 교수는 1990년대 말부터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관련 자료를 조사해 왔으며, 이번에 확보한 자료 이미지를 재단에 기증했다.전 교수는 7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기증식에서 “폭격 실행 부대의 임무 보고와 한국인 생존자의 진술서, 울릉도 경찰의 보고가 동일한 문서철 안에 공존한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1945∼1948년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직접 증명하는 1차 사료가 거의 없었는데,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역사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2 days ago
6
![박지훈 '해피 바이러스~' [★영상]](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7/2026071009031358804_1.jpg)



![혜은이 "극심한 공황장애..나쁜 생각 했지만 자식 보며 버텼다" [데이앤나잇]](https://image.starnewskorea.com/cdn-cgi/image/f=auto,w=1200,h=889,fit=cover,q=high,sharpen=2/21/2026/07/2026071008062741365_1.jpg)



![[속보] 北, 韓·EU성명에 “체제존중 위장 내던져…韓 적대 원칙 불변”](https://pimg.mk.co.kr/news/cms/202606/13/news-p.v1.20260613.89255ddca2b0487c98e7f979e85a8a39_R.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