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태어난 곳. 불 꺼진 담배 공장에 새로운 예술의 불씨를 지핀 도시. 세계공예협회가 인증한 국내 유일 ‘세계 공예 도시’ 충북 청주시의 이야기다. 국제 공예 전시회인 청주공예비엔날레는 1999년 출범했다. 손끝이 빚어내는 기술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는 청주시는 9월 4일부터 60일간, 14회째 행사를 개최한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오는 9월 4일부터 담배 생산 공장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 문화제조창과 청주시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역대 최장 기간 비엔날레”, “역대 최대 국가 참여”, “역대 최대 규모의 지역 작가 참여”, “역대 최대 규모 전시”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60일 동안 본 전시부터 특별전, 연계 전시까지 22개 전시가 동시다발로 진행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표현한 본 전시에는 16개국에서 140명의 작가가 작품 300여 점을 선보인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공예로 새로운 세상 짓기’다. 2023년에 이어 비엔날레를 이끄는 강재영 예술감독은 “행사의 핵심 주제어인 ‘짓기’는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다는 의식주 전체의 창작 행위를 의미이자 문화의 혼성성과 상호 연결성을 내포한다”며 “올해 비엔날레는 현대 문명에 대한 공예의 응답이자, 새로운 세상을 짓는 설계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본 전시 외에도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Entangled and Woven’,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의 공예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성파 특별전’ 등은 눈여겨볼 만하다. 공예의 동시대성과 미래성을 제시하는 작품을 공모하는 ‘청주국제공예공모전’, 태국 공예를 통해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초대국가전’, 공예 매개 국제 개발원조 사업 성과를 소개하는 ‘키르기즈 ODA 성과전’ 등도 이어진다.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는 올해 역대 최다인 71개국이 참여했다. 총 990건의 작품이 접수돼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강 예술감독은 “2021년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자 정다혜 작가는 세계적 권위의 로에베 공예상 우승을, 2023년 대상 수상자인 고혜정 금속공예 작가는 유럽 최대 규모의 공예 전시회 호모 파베르에서 최우수 작가로 선정되는 등 역대 수상자들이 현재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Entangled and Woven’는 8명의 섬유예술가가 전통을 재해석해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인도 국립공예박물관,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의 협력 프로젝트다.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시작으로 2026년 2월 인도, 2026년 영국으로 순회한다. 한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8팀이 양국을 넘나드는 리서치 트립을 통해 신작을 선보이고, 400여 년의 섬유 역사를 간직한 휘트워스 미술관의 희귀한 소장품도 함께 전시한다. 섬유를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는 고소미 작가는 인도의 민속 자수 기법에서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미러 워크 mirror work’라고도 불리는 이 기법은 작은 거울 조각을 면으로 감싼 후 자수를 놓는 독특한 민속 예술이다. 고 작가는 “탁하고 거친 질감의 원단들이 겹겹이 쌓여 단단하게 묶인 광목을 마주할 때마다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저항 정신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면이라는 소재에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바늘이 거울을 뚫지 못하니 억지로 꿰뚫으려 하지 않고, 동시에 복주머니로 감싸안으며 감내하는 인도의 미러 워크 기법이 우리와 일제의 역사, 인도와 영국의 역사와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에도 본연의 것과 새로 받아들인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재배치되는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