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은 화물차 운전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골의 국도변 기사식당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유럽은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운송이 일상인 만큼, 화물차 운전사들은 한 번에 수백 km를 이동한다. 이들은 거대한 트럭을 몰고 도심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기는 어렵고, 저녁에는 차량 안에서 잠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화물차 운전사들은 그저 식당이 아니라 샤워와 휴식이 가능한 시설을 찾는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있지만 수십에서 수백 대의 대형 트럭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기사들은 넓은 주차공간을 갖추고 식사, 샤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국도변 식당을 선호한다.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 인근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한 화물차 운전사의 집에서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한 뒤 그의 일상에 맞춰 트럭에 올라 길을 나섰다.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데올 인근의 ‘레스칼 빌라주(L’Escale Village)’였다. 이곳은 유럽 각지의 트럭이 모여드는 최대 규모의 기사식당 중 하나다. 약 550석 규모의 식당과 대형 트럭 최대 220대를 수용할 수 있는 2만5000㎡ 규모의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장거리 운전자뿐 아니라 지역주민까지 찾는, 식사와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루에 800∼1200식, 많을 때는 1500식까지 준비한다.
프랑스의 기사식당은 한국의 휴게소와 다르다. 이곳에서는 프랑스답게 식사가 하나의 코스로 이어진다. 15∼20유로면 전식과 본식, 치즈나 디저트, 커피까지 갖춘 한 끼가 완성된다. 때로는 일과를 마친 뒤 식사와 함께 소량의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빠르게 허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긴 여정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에 장거리 운전자들에게 기사식당은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하지만 이 문화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한때 프랑스 전역에 3500곳에 달하던 기사식당은 이제 300곳 안팎만 남았다. 고속도로 체계와 운전 환경의 변화, 물류산업의 효율화가 겹치며 그 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이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파리 시내에도 ‘셰 레옹(Chez Lon)’, ‘레 마르셰(Les Marches)’ 등이 기사식당 체인인 ‘를레 루티에(Relais Routiers)’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대형 트럭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푸짐한 식사,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식탁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차량을 빌려 프랑스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고속도로 휴게소나 국도변 기사식당에 한 번쯤 들러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의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프랑스 도로문화의 마지막 장면인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식탁에서 즐기는 역사적인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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