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라고 했다.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가 상냥했다. 윤기는 흐르지 않았다. 상담원 연결까지 10분 이상 걸리니 간단한 업무는 챗봇을 이용하라고 권했다. 디지털 ARS(자동응답시스템)로 하든지, 말로 하든지, 누르든지 하라고 했다.
말로 해봤다. “카드 단종 문자가 왔다. 20년 가까이 써 온 카드인데, 일방적으로 없애버렸다. 너무한 것 아니냐.”
아이유는 못 알아들었다. 한도, 결제대금 조회 서비스를 원하냐 묻고 ‘네, 아니요’로 답하라고 했다. 원하는 대답은 무시하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알고리즘 유튜브 영상이 지겨워 리셋하려고 해도 방법을 몰라 포기하듯 고구마가 목구멍에 꽉 찼다. 결국 상담원을 바꿔 달라고 했다. 상담원 연결은 실패했다.
이윤 추구는 기업 존재 이유
기업의 목적이 이윤이라는 것은 초등 경제학이다. 효율이 이윤을 낳는다. ‘효율’은 인간에게 숙명이다. 주먹도끼가 칼, 창으로 활과 총으로 발전한 것은 효율 때문이었다. 1980년대 후반 신용카드 회사에서 도입한 ARS는 30년 뒤 인공지능(AI) 챗봇으로 진화했다.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2024년 5월 기준 국내 8개 카드사(신한·현대·삼성·국민·롯데·우리·비씨·하나)의 콜센터 상담원은 1만90명이다(금융감독원). 2019년보다 2346명 줄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게 AI 상담사다. 효율성은 그만큼 높아졌다. 상담원의 생존은 위험해졌다. AI 전환으로 사라질 직업에서 빠지지 않고 ‘고객 상담사’가 들어갔다.
카드사들은 단순 상담은 AI로 대체하고, 상담원은 까다로운 민원에 투입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카드의 AI 대체율은 2022년 23%에서 2023년 31%로 상승했다. 조만간 절반을 넘을 전망이다.
그래도 고객 열불은 꺼줘야
기업의 효율성은 올라갔는데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은 어떨까. 콜센터 이용 만족도가 높아졌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카드 분실 신고 같은 단순 업무는 무난했지만, 불만 사항이나 복잡한 문제의 답을 얻는 과정은 지난했다. ‘금융회사 콜센터의 AI 상담 서비스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만족한다고 답한 고객은 21.6%에 불과했다(2024년 엠브레인). ‘불만족’ 의견은 39.4%로 두 배에 육박했다. 가장 큰 불만족 요인은 AI가 요구사항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고객만 복장 터진다. 상담원 연결은 하세월이고, 챗봇은 앵무새처럼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한다. 상담원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성난 고객은 감정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내 권리를 찾아달라고 호소한다. 전화기 너머에서 양쪽 감정이 불꽃 튄다. 상담원은 그 과정에서 공감한다. 그리고 치밀어 오른 고객의 ‘열불’을 꺼준다. 고객이 상담원을 찾는 이유다.
콜센터엔 어려운 숙제일 텐데 감정 없는 챗봇은 성난 고객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상담원 확대는 비용을 늘린다. ‘효율’과 ‘고객 만족’ 사이에서 카드사는 어떤 해결책을 찾을까. 찾으려고 노력은 하나 모르겠다. 영화 ‘아이언맨’의 홀로그램 자비스가 등장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데 인간 상담원이 그립다. 아이유,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