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버리고, 더 비우고, 오래된 것을 품어내며 평균 이상의 행복 속으로

3 weeks ago 8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전경 / 사진. ©unsplash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전경 / 사진. ©unsplash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석유로 쌓은 막대한 부로 베네수엘라는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다비드 브륄렘버그는 그 성장의 복판에서 활약한 기업가이자 부동산 개발자다. '베네수엘라 금융계의 다윗 왕(King David)'이라고도 불렸던 그는 1980년대 후반 거대한 복합 상업 단지 '센트로 피난시에로 콘피나사스(Centro Financiero Confinanzas)' 건설에 나선다. 수도 카라카스 중심부에 위치한 이 단지는 45층 규모의 메인 빌딩인 토레 다비드(Torre David) 외에도 2개의 부속 빌딩과 주차 타워, 아트리움이 포함돼 있었다. 계획대로 완성된다면 베네수엘라의 부와 번영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될 터였다.

1970년대 원유가격 상승으로 베네수엘라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Carlos Andrés Pérez)은 이 복합단지의 착공이 시작될 즈음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시작한 시장개혁이 불안정한 정세와 맞물려 실패했고, 불만을 가진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1989년 카라카스에서 일어난 폭동 '카라카소'에 이어, 1993년에는 브륄렘버그가 사망하게 된다. 1994년 베네수엘라는 결국 파산을 선언하고 IMF의 구제를 받게 된다. 결국 완공까지 10%만을 남겨둔 다비드의 복합단지는 모든 것이 멈춘 상태로 10여년간 도시의 유령으로 남게 됐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토레 다비드 / 사진. ©EneasMx, 출처. Wikimedia Commons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토레 다비드 / 사진. ©EneasMx, 출처. Wikimedia Commons

카라카스 도시 외곽 바리오(빈민촌)에 살던 몇 명의 가족이 몇 명의 경비를 몰아내고 복합단지의 메인 건물 토레 다비드에 입성한 것은 2007년의 일이었다. 지속된 경제 위기와 정치적 혼돈으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무단 점유는 곧 700여 가구로 늘어났고, 3000여명이 폐허가 된 건물에서 공동체를 꾸렸다. 많은 인구의 유입으로 더 큰 혼돈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건축가가 떠난 폐허에 자리 잡은 이들은 빠르게 질서를 찾아갔다. 적절한 범위 내에서 사적인 영역 경계를 정하고, 각자의 삶의 방식에 맞춰 공간을 꾸몄다.

주민들은 사적 공간뿐만 아니라 공용 공간을 끊임없이 보수해나가며 폐허를 삶의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이들이 설립한 '베네수엘라의 추장'이라는 협동조합은 공사가 중단된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에 대응했다. 공간을 구분하고 환기를 위한 공기의 흐름을 개선하는 역할은 물론, 교회, 식료품 전문점, 이발소와 농구장 등 공동체의 공간을 마련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을 겪는 주민들을 위해 10층까지 이어진 경사로를 통해 오토바이 택시를 운영했으며, 주민들이 번갈아 당번을 서는 자체 경비 시스템을 마련해 치안을 유지했다. 10%의 미완의 공간은 공동체의 협심과 창의력이 더해져 규칙과 질서가 잡힌 윤택한 삶의 터전으로 변모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토레 다비드의 외관 / 사진. ©Saúl Briceño, 출처. Wikimedia Commons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위치한 토레 다비드의 외관 / 사진. ©Saúl Briceño, 출처. Wikimedia Commons

남미의 대표적인 자유 무역항구이자 산업도시인 칠레의 이키케(Iquique)도 카라카스와 같이 주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004년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소속된 공공건축 프로젝트 그룹 '엘레멘탈(Elemental)'은 정부의 의뢰로 이키케 도심에 위치한 약 5000㎡의 슬럼가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약 100가구를 짓기 위해 투여된 예산은 가구당 약 1만달러 내외로, 개인 저축과 정부지원금, 은행 대출이 포함된 비용이었다. 이는 일반적인 중산층 주택을 짓기 위한 예산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주민들이 그동안 도심에서 쌓아둔 네트워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도시 외곽으로 이동해 예산을 줄이는 방법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칠레의 산업도시 이키케 전경 / 사진. ©unsplash

칠레의 산업도시 이키케 전경 / 사진. ©unsplash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집을 절반만 짓는 선택을 했다. 완성된 40㎡의 주택이 아닌, 자발적으로 증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미완성의 80㎡ 주택을 지은 것이다. 이외에도 주민들을 건설 기간 노동에 참여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한정된 예산으로 공공주택 단지를 완성한다. 절반만 완성된 건축물은 언뜻 폐허처럼 보였지만, 거주자들이 자유자재로 변형을 가하면서 나머지 절반을 완성시키자 근사한 주택단지로 변모했다. 아라베나는 "도시의 인구 유입으로 인한 슬럼가의 형성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지속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럼가를 없애기보다 개선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라고도 말했다. 물론, 그 개선의 과정에는 주민들이 건축에 직접 참여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이키케 도심의 슬럼가를 개선하는 방식의 주택단지를 지었다(Quinta Monroy Housing Project) / 사진. © Cristobal Palma, 출처. ELEMENTAL 홈페이지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이키케 도심의 슬럼가를 개선하는 방식의 주택단지를 지었다(Quinta Monroy Housing Project) / 사진. © Cristobal Palma, 출처. ELEMENTAL 홈페이지

도시는 대체로 시대의 평균을 따라서 자란다. 어느 누가 제시하지 않아도 중산층 삶의 이상이 그려지고 그것을 따라 주거와 생활공간이 만들어진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재개발로 아파트가 우후죽순 세워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평균을 따라가는 삶이 아파트 평면도에 반영되기도 한다. 국민 평형과 인테리어로 완성된 아파트에는 개별적인 취향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일정 기간을 거치면 공간구성과 인테리어는 향상된 평균의 삶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이 과정은 모두에게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도시에 유입되는 인구는 끊임이 없으며, 평균의 삶을 위한 비용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카페 '도덕과 규범'의 대표 이규범의 창업 역사도 평균적인 카페의 기준을 따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전설의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 扮)가 커피 볶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해 덜컥 로스팅 머신을 구입했다. 부가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합정동과 연희동을 오가며 가게를 두 번이나 열고 닫았다. 평균의 카페를 위해서는 그만한 유동 인구가 있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월세를 내야 했다. 즐기기 위해서 시작한 로스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가게를 열고 닫으면서 가장 신경이 쓰인 것은 폐기물이었다. 1.5t 트럭 한 대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고,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 폐기해야 했다.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외관 / 사진. ©조원진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외관 / 사진. ©조원진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내부 / 사진. ©조원진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내부 / 사진. ©조원진

세 번째로 가게를 열겠다고 결심할 때 이규범은 나름의 규범을 세웠다. 욕심을 버리고 최소한의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자.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당장 옮겨도 쓰레기가 남지 않게 매장을 만들자. 그리하여 신수동의 외진 골목 모퉁이 상가 자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인테리어는 홍대 앞 업사이클링 디자인 업체인 '람펠'과 함께 만들었다. '폐기되지 않을 나의 것들을 사랑하자'는 철학을 가진 람펠의 대표 도민환의 철학을 따라 새것을 안 사고, 있는 것을 쓰고, 누가 썼던 것을 쓰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카트와 스피커를 활용해 바를 만들고 대용량 드리퍼로 조명 갓을 대신했다. 어머니가 쓰던 화장대와 어릴 때 쓰던 피아노 의자를 가져와 객석을, 오래된 공구를 재활용해 선반을 만들었다. 언제든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니 손이 가고 시간이 쌓이는 대로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신수동 골목 모퉁이에 위치했던 카페 '도덕과 규범'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신수동 골목 모퉁이에 위치했던 카페 '도덕과 규범'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신수동에서의 카페 '도덕과 규범'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신수동에서의 카페 '도덕과 규범'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즐기며 커피를 만드니, 유동 인구가 없던 골목에서도 그럴싸한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공간은 물질적 요소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이규범은 손님과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일'을 만들었다. 단골손님이던 소설작가의 작품과 인근 레코드 가게 주인이 번역한 책을 소재로 열었던 '도덕과 문학과 규범' 행사가 대표적이다. 밴드 네튤농(네덜란트 튤립 농장)의 멤버이기도 했던 이규범은 줄곧 동료 뮤지션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평균에 도달하기 위한 압박에서 벗어난 자유의 공간에 사람들이 몰려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며 평균 이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만들어냈다.

도덕과 규범은 신수동 건물이 매각되면서 상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장을 철거할 때 쓰레기를 최소화하자는 다짐은 이때 현실이 됐다. 트럭을 하나 가득 채웠던 과거와 달리 고작 한 봉지의 쓰레기만이 나왔다. 매장을 구성했던 모든 요소들은 위치와 용도를 조금씩 달리하여 다시 새로운 공간을 채웠다. 활기찬 분위기도, 공간을 채우던 사람들도 매장의 인테리어처럼 헤쳐 모였다. 변화한 것이 있다면 매장의 파사드다. 기존에는 원래 건물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샷시와 여닫이문을 썼는데, 새로운 매장에서는 본래 차고지였던 공간의 덧문(셔터)을 활용해 좁은 공간에 개방감을 더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덧문은 닫혀 있을 때도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느낌을 더한다.

신수동 매장 철거 후에도 폐기물이 거의 남지 않았다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신수동 매장 철거 후에도 폐기물이 거의 남지 않았다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다양한 형태의 바를 만들어 공간을 조성한다.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다양한 형태의 바를 만들어 공간을 조성한다. / 제공. 카페 도덕과 규범

인구가 늘어나도 도시의 재화와 시간, 토지는 한정적으로 분배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에서의 공간 점유와 공동체 형성, 칠레 빈민가에 도입된 새로운 건축 개념은 도시 거주에 새로운 해법을 제공했다. 갖춰진 평균의 공간보다 미완이지만 삶이 녹아들 수 있는 공간이 더 폭넓게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더 짓고, 새로이 바꾸고, 오래된 것을 밀어내는 일은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안긴다. 덜 버리고, 더 많이 비우고, 오래된 것을 품어내는 방법만이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도덕과 규범의 공간도 보장되고 완성된 평균을 따르기보다 언제든 비우고 다시 채울 수 있는 방향을 따랐다. 사람들과 함께 숨을 쉬고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도덕과 규범이 공간에서 미래의 도시가 품어야 할 공간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 사진. ©조원진

상수동 카페 '도덕과 규범' / 사진. ©조원진

조원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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