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뮤지컬이 토니상을?…'어쩌면 해피엔딩' 美서 돌풍

16 hours ago 1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현지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은 이 작품은 오는 8일(현지시간) 열리는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상인 ‘토니 어워즈’ 수상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작품상 △연출상 △각본상 △음악상(작곡 및 작사) △오케스트레이션(편곡상) △남우주연상 △무대 디자인상 △의상 디자인상 △조명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 등 총 10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려두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사진=NHN링크)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 (사진=CJ ENM)

◇대학로서 출발한 K뮤지컬, 美브로드웨이 입성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6년 대학로에 있는 약 300석 규모 중소극장인 DCF 대명문화공장 라이프웨이홀(현 예스24 스테이지 1관)에서 초연을 올린 뮤지컬이다. 머지않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을 창작한 건 ‘윌휴’ 콤비로 통하는 극작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러슨이다. 뉴욕대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2012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로 데뷔한 뒤 한국 뮤지컬계를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작업을 이어왔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와 윌 애러슨이 2014년 스토리 구상을 시작한 두 번째 협업작이다. 그해 가을부터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발전시켰고, 리딩 공연과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친 끝에 초연을 올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관객과 평단 호평 속에 5연(2016년·2018년·2020년·2021년·2024년)까지 성공적으로 치르며 대학로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그 사이 작품은 2017년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상·음악상·연출상·여자인기상 등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한국뮤지컬어워즈’ 소극장뮤지컬상·극본/작사상·작곡상·연출상·프로듀서상·여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CJ ENM이 제작을 맡았던 2021년에는 ‘이데일리 문화대상’에서 뮤지컬 부문 최우수상이자 영예의 대상작으로 꼽혔다.

영어 버전 제작은 개발 단계 때부터 차근차근 진행돼왔고, 2016년 뉴욕에서 진행한 리딩 공연을 통해 현지 유명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드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면서 브로드웨이로 입성 길이 열렸다. 이후 ‘어쩌면 해피엔딩’은 2020년 현지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렸고,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지나 지난해 10월 뉴욕에 있는 약 1000석 규모 대극장인 벨라스코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공연을 시작했다.

‘제8회 이데일리 문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어쩌면 해피엔딩’. 예주열(오른쪽) CJ ENM 공연사업부장과 주연 배우 한재아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 공연 5연(사진=CJ ENM)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 공연 5연(사진=CJ ENM)

◇초반 부진 딛고 인기작 반열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영어 버전은 한국 버전과 전체적인 틀은 같지만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출연 배우가 3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고, 악기 구성에 콘트라베이스, 트럼본 등을 추가해 사운드에 풍성함을 더했다. 대본과 넘버 구성에도 일부 변화를 줬다. 연출은 ‘토니 어워즈’ 수상 경력이 있는 마이클 아덴이 맡았다. 남자 주인공 올리버 역과 여자 주인공 클레어 역은 각각 미국 배우 대런 크리스와 중국계 미국 배우 헬렌 J.셴이 연기하고 있다.

개막 후 초반 흐름은 순탄치 않았다. 유명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아닌 순수 창작극인 데다가 ‘윌휴’ 콤비가 브로드웨이 업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다 보니 큰 관심을 얻지 못한 것이다. 프리뷰 공연 시작 이후 4주간 주간 매출액은 30만달러(약 4억원)를 밑돌았고 현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연이 일찌감치 막을 내릴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현지 언론과 평단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신작 뮤지컬”(데일리 비스트), “놀랍고, 즐겁고, 가슴 아프다”(뉴욕타임스) 등의 호평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공연이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 추이가 우상향 곡선을 그렸고, 12월부터 90%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안정권에 들어섰다. 12월 넷째 주엔 처음으로 주간 매출액 100만달러(약 13억원) 돌파를 이뤄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흥행세는 지난달 초 ‘토니 어워즈’ 후보 지명 이후 더욱 거세진 모양새다. 이 작품은 최근 4주 연속으로 주간 매출액 100만달러를 넘겼다. 연출가 마이클 아덴은 미국 공연 매체 플레이빌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IP를 기반 작품도 아니고 유명 영화배우가 참여하지도 않아 위험부담이 컸지만, 모두가 스토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히며 작품의 성공에 대한 기쁨을 표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사진=NHN링크)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사진=NHN링크)

◇현지 시상식 잇따라 섭렵…토니상 수상 전망 밝아

1947년 시작된 ‘토니 어워즈’는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통한다. 시상식은 아메리칸 시어터 윙과 브로드웨이 리그가 주최하며, 현지 공연 및 언론 관계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가린다. 78회에 해당하는 올해 시상식은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며, 2024~2025 시즌 공연을 대상으로 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최근 현지에서 열린 각종 연극·뮤지컬 시상식에서 연이어 낭보를 전하며 ‘토니 어워즈’ 수상 기대감을 키웠다. 앞서 이 작품은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상’(작품상), ‘드라마 리그 어워즈’(작품상·연출상), ‘외부 비평가 협회상’(작품상·극본상, 연출상, 음악상),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작품상·연출상·음악상·작사상·극본상·무대디자인상) 등을 ‘도장 깨기’ 하듯이 섭렵했다.

‘K뮤지컬’로 칭할 수 있는 작품 중에선 ‘위대한 개츠비’가 지난해 ‘토니 어워즈’에서 의상 디자인상을 받은 바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 나서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도 만들어진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의상 디자인상은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 린다 조가 받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위대한 개츠비’에 이어 ‘토니 어워즈’ 트로피를 품으며 ‘K뮤지컬’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지는 계기를 만들지 주목된다. 특히 이 작품은 한국에서 개발한 순수 창작물이자 한국인 극작가가 참여한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토니 어워즈’ 수상이 미칠 파급 효과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과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보다 더 놀라운 K컬처의 쾌거이자 일대 사건으로 조명받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에는 NHN링크가 투자사로 참여하고 있다. NHN링크는 올 하반기 중 국내에서 ‘어쩌면 해피엔딩’ 6연을 선보일 계획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