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분양계약 해제조항, 경미한 사유여도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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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분양계약 해제조항, 경미한 사유여도 따라야”

입력 : 2026.06.12 14:57

‘시정명령=해제사유’ 계약
대법 “경중 무관하게 따라야”
건설업계 “소송 리스크 우려”

부동산 건설업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건설업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분양계약을 체결하면서 해제 요건을 명시했다면, 사안이 경미하더라도 계약서 문언대로 엄격히 따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수분양자의 계약 해제 청구권을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A씨가 시행사 B사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2년 5월 대구의 한 오피스텔 한 채에 대한 수분양자 지위를 승계했다. 이 계약에는 ‘수분양자는 분양자가 건축물분양법 9조에 따른 시정명령 등을 받은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약정 해제 조항이 담겼다.

B사는 2023년 12월 분양광고안 내용 누락 등으로 인해 관할구청으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A씨는 약정 해제 사유에 해당한다며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B사가 따르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양계약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시정명령을 받게 된 위반사항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하거나, 사전에 위반 사실을 알았다면 분양계약을 맺지 않았으리라 볼 정도로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판단을 뒤집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계약 당사자 사이에 약정해제 사유를 처분문서로 작성한 경우, 그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약 해제 요건을 법률 문서로 정리했다면, 그 의미를 임의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해제 조항은 그 문언의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며 “이러한 객관적 의미와 달리 시정명령의 원인이 된 위반사항의 경중 등을 고려해 해제권 발생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으로 그 문언을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수분양자의 계약 해제권을 과거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난 1월 울산지법 민사15단독 우정민 부장판사는 분양 공고 때보다 입주 가능일이 1년 이상 지났다면 계약 해지 사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분양자인 주택조합 측은 계약서에 ‘공정에 따라 입주예정일이 다소 변경될 수 있다’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 사유로 입주가 지연됐을 때는 해지를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며 계약 해제를 거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맥락의 판결이 잇따르면서 부동산 시장엔 혼란이 커지고 있다. 허위·과장 광고로부터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악성 계약자와 기획 변호사에게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차별 소송이 확산될 경우 침체한 지방 부동산이 직격탄을 맞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시정명령은 2003년 서울 동대문 ‘굿모닝시티 사기 사건’ 이후 만들어진 제도다. 분양사업자가 허위 과장 광고하거나 법령이 정한 필수 사항을 누락했을 때 행정청이 이를 바로잡아 계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목적이었다.

최근 판결의 파장이 큰 이유는 건축물분양법 시행령이 작은 실수로 인한 시정명령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지 않고 있어서다. 해당 법 시행령은 ‘시정명령을 받은 경우 분양받은 자는 분양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고만 명시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소송이 걸릴 위험이 높은 상황”이라며 “일거리를 찾는 법무법인의 니즈까지 맞아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금융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시행사는 중도금 대출 상환 능력을 상실하고 시공사의 자금난과 금융권의 PF 부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시세 하락기의 손실을 시행사에 전가하기 위한 ‘도덕적 해이’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공급 자체를 막혀 안그래도 심한 전월세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오피스텔 입주량은 지난해(3만8957실)의 33% 수준인 1만2950실에 불과하다. 2028년엔 5637실까지 입주 물량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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