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배임죄 폐지' 위한 특례법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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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이 배임죄를 폐지하기 위해 특례법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형법을 비롯해 30개가량의 개별 법안을 모두 뜯어고치는 기존 과정이 녹록지 않자 배임 관련 범죄 유형을 모두 포함하는 통합법을 새롭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특례법이 신설될 경우 경제계 숙원 과제인 ‘경영판단 원칙 성문화’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특례법에는 ‘이름만 다른 배임죄’가 계속 남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무부 “개별 입법 어렵다”

당정 '배임죄 폐지' 위한 특례법 만든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 태스크포스(TF)는 법무부와의 논의를 거쳐 상법·형법 등의 배임죄를 대체할 특례법을 신설하고, 해당 법안에 경영판단 원칙 관련 면책 조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

TF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지난달 13일 개별 조항을 모두 고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 같은 특례법 추진 방안을 TF에 보고했다”며 “특례법에는 배임죄의 유형별 범죄들이 모두 담기고, 여기에 경제계 요구인 경영판단 원칙도 면책 조항의 일부로서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이 배임죄 폐지를 공식화한 것은 지난 9월이다.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라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는 대신, 30개 상당의 다른 법을 고쳐 개별 대체 입법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배임죄 판례가 3300여 건에 이르다 보니,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이를 유형화하는 것을 넘어 개별 입법안까지 마련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TF 한 의원은 “부동산 이중매매, 금융기관의 친인척 무담보 대출, 특허 무단 대여 등 기존 배임 범죄를 처벌하려면 부동산 관련법·은행법·특허법 등을 모두 고쳐야 한다”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란 것은 이미 TF 의원들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유형별 범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특례법을 내놓고, TF는 내년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처리를 추진하는 것을 계획으로 잡고 있다.

◇‘모호한 배임죄’ 또 나오나

특례법이 도입되면 경영판단 원칙을 조문화하는 작업은 한층 쉬워질 전망이다. 경영판단 원칙은 이사가 합리적인 경영상 결정을 했는데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최근 민주당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넓히는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경제계에선 배임죄 적용 범위가 확대돼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펼쳐왔다. 특례법 형태로 배임죄 대체입법이 진행될 경우, 특례법에만 이 같은 면책조항을 포함하면 돼서 복잡성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법이 모호하게 성안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일 특례법으로 유형을 나누면서도 개별 입법만큼 구체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라며 “특례법 형태는 신법이 되는데, 폐지될 형법상 배임죄와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법이 모호하게 설정될 경우, 형사 소송에선 피고인에게 유리한 해석을 보장할 확률이 높아 처벌을 피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란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서도 논쟁이 가속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에서 핵심 혐의가 배임이어서다.

이미 일부 TF 의원들은 특례법에 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일부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배임죄를 폐지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아직 법무부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영역도 있어서 결론은 바뀔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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