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영양소 흡수를 돕는 소화액이다. 담도를 타고 소장으로 넘어가 지방 소화를 돕는다. 태어날 때부터 담도가 막히면 간에서 답즙 배출이 안 돼 독성이 쌓이면서 간이 서서히 망가진다. 소아 담도폐쇄는 신생아 1만 명 중 1명 정도에 해당하는 흔치 않은 질환이다. 생후 1~2개월 신생아 시기에 수술을 꼭 받아야 하는 심각한 질환이기도 하다.
인경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사진)는 이런 아이들에게 간과 소장을 연결하는 카사이 수술을 주로 집도한다. 간에 독성이 지나치게 많이 쌓여 망가진 아이들에겐 새 간을 이식한다. 소아는 성인보다 작아 수술이 상당히 까다롭다. 수술 후 합병증 위험도 높아 챙겨야 할 게 많다. 소아외과를 지망하는 의사들이 점차 줄어드는 이유다. 인 교수는 “아이들 회복과 성장 과정이 다양해 항상 긴장하는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간다”며 “힘든 치료를 잘 견디고 회복해 부모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나가는 아이들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담도 막힌 아이들 수술로 치료
인 교수는 선천성 담도폐쇄 질환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는 소아외과 의사다. 그가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국내 소아 간이식 수술의 40%가량을 책임졌다. 담도폐쇄 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는 의미다.
아이의 담도가 말라붙는 담도폐쇄가 있어도 태어나자마자 이를 알아채기는 힘들다. 외관상 눈에 띄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생후 5~6주에 병원을 찾는 아이가 많은 이유다. 담도가 막힌 아이들은 대부분 태어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황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병원을 찾는다. 변 색깔이 황금색에서 서서히 밝아지며 회색이나 하얀색 변을 보는 아이도 많다.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꽉 막혀 제 기능을 못 하는 담도를 잘라낸 뒤 간과 소장을 연결하는 카사이 수술이 필요하다.
카사이 수술도 한계는 있다. 모든 아이에게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 교수는 “막힌 고속도로를 뚫어주는 수술이기 때문에 정체가 풀리면서 수술 후 10명 중 5~6명은 황달 증상이 사라진다”며 “나머지 4~5명은 간에 독성이 서서히 쌓여 간경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담즙길 만들어도 30%는 이식 필요
카사이 수술을 일찍 받지 못한 아이들도 문제다. 이미 간이 망가진 뒤 발견하면 새 담즙길을 만들어줘도 간 기능을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은 간을 이식받아야 한다. 대개 담도폐쇄증이 있는 환자 3명 중 1명 정도가 태어난 지 1~2년 안에 간을 이식받는다.
국내에서 성인이 되기 전 간 이식 수술을 하는 아이는 매년 40~50명 정도다. 하지만 5세 이하 소아 기증자는 2023년 4명에 불과했다. 소아 뇌사자의 간을 아이에게 이식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의미다. 이런 아이들에겐 아빠나 엄마의 간 일부를 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한다. 국내 소아 간 이식 환자의 80% 정도가 이렇게 가족의 간을 이식받았다. 그는 “5세 안팎 아이들은 어른 간의 15~20% 정도를 떼서 이식하고 10세가 넘으면 오른쪽 간(우엽)의 60% 정도를 떼 이식한다”며 “아이가 클수록 기증자의 간을 많이 떼야 하는 게 부담”이라고 했다.
카사이 수술과 간이식 수술 기술이 발전하면서 담도폐쇄증을 가진 아이들의 생존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두 치료 모두 환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카사이 수술은 1959년 일본에서 개발됐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수술을 받은 아이들의 30% 정도는 1~2년 안에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인 교수는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간이 망가지는 아이들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소장 장내미생물 환경을 분석하고 항체 등 면역계를 분석해 간이 나빠지는 원인을 찾고 있다.
○담도폐쇄 아이라면 조기 진단 중요
간이식 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수술한 직후엔 고용량 면역억제제를 써야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폐렴 등 각종 감염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신장이 망가지고 성장에도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 건강을 살피면서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만큼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질환을 예방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찍 찾을수록 간 기능을 많이 보전할 수 있다. 이식해야 하거나 다른 합병증 등이 생길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는 의미다. 담도폐쇄 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데 가장 유용한 지표는 변 색깔이다. 아이의 변 색깔이 점차 하얗게 바뀐다면 의심해야 한다. 과거엔 엄마들이 아이를 여러 명 낳아 변 색깔이 이상하면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최근엔 아이를 한 명만 낳는 엄마가 많아 변 색깔이 이상해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매일 아이들 대변 색을 살피면서 변화가 있다면 빠르게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인 교수는 “기저귀나 분유 겉포장에 정상 대변 색깔을 알려주는 코팅카드 등을 붙여 조기 진단을 돕는 캠페인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담도폐쇄가 있으면 엄마들이 죄책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담도폐쇄로 태어나 간이 온전히 기능하지 못해도 성인이 돼 일상생활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보고 주치의를 믿어야 합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