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 막혀 고통받는 아이들에 '새 간' 선물…카사이 수술 권위자

20 hours ago 1

인경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가 간이 망가져 제 기능을 못 하는 소아 환자에게 간을 이식하는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인경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가 간이 망가져 제 기능을 못 하는 소아 환자에게 간을 이식하는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영양소 흡수를 돕는 소화액이다. 담도를 타고 소장으로 넘어가 지방 소화를 돕는다. 태어날 때부터 담도가 막히면 간에서 답즙 배출이 안 돼 독성이 쌓이면서 간이 서서히 망가진다. 소아 담도폐쇄는 신생아 1만 명 중 1명 정도에 해당하는 흔치 않은 질환이다. 생후 1~2개월 신생아 시기에 수술을 꼭 받아야 하는 심각한 질환이기도 하다.

담도 막혀 고통받는 아이들에 '새 간' 선물…카사이 수술 권위자

인경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교수(사진)는 이런 아이들에게 간과 소장을 연결하는 카사이 수술을 주로 집도한다. 간에 독성이 지나치게 많이 쌓여 망가진 아이들에겐 새 간을 이식한다. 소아는 성인보다 작아 수술이 상당히 까다롭다. 수술 후 합병증 위험도 높아 챙겨야 할 게 많다. 소아외과를 지망하는 의사들이 점차 줄어드는 이유다. 인 교수는 “아이들 회복과 성장 과정이 다양해 항상 긴장하는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간다”며 “힘든 치료를 잘 견디고 회복해 부모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나가는 아이들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담도 막힌 아이들 수술로 치료

인 교수는 선천성 담도폐쇄 질환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는 소아외과 의사다. 그가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국내 소아 간이식 수술의 40%가량을 책임졌다. 담도폐쇄 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는 의미다.

아이의 담도가 말라붙는 담도폐쇄가 있어도 태어나자마자 이를 알아채기는 힘들다. 외관상 눈에 띄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생후 5~6주에 병원을 찾는 아이가 많은 이유다. 담도가 막힌 아이들은 대부분 태어난 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황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병원을 찾는다. 변 색깔이 황금색에서 서서히 밝아지며 회색이나 하얀색 변을 보는 아이도 많다.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꽉 막혀 제 기능을 못 하는 담도를 잘라낸 뒤 간과 소장을 연결하는 카사이 수술이 필요하다.

카사이 수술도 한계는 있다. 모든 아이에게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 교수는 “막힌 고속도로를 뚫어주는 수술이기 때문에 정체가 풀리면서 수술 후 10명 중 5~6명은 황달 증상이 사라진다”며 “나머지 4~5명은 간에 독성이 서서히 쌓여 간경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담즙길 만들어도 30%는 이식 필요

카사이 수술을 일찍 받지 못한 아이들도 문제다. 이미 간이 망가진 뒤 발견하면 새 담즙길을 만들어줘도 간 기능을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 이런 아이들은 간을 이식받아야 한다. 대개 담도폐쇄증이 있는 환자 3명 중 1명 정도가 태어난 지 1~2년 안에 간을 이식받는다.

국내에서 성인이 되기 전 간 이식 수술을 하는 아이는 매년 40~50명 정도다. 하지만 5세 이하 소아 기증자는 2023년 4명에 불과했다. 소아 뇌사자의 간을 아이에게 이식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의미다. 이런 아이들에겐 아빠나 엄마의 간 일부를 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 수술을 한다. 국내 소아 간 이식 환자의 80% 정도가 이렇게 가족의 간을 이식받았다. 그는 “5세 안팎 아이들은 어른 간의 15~20% 정도를 떼서 이식하고 10세가 넘으면 오른쪽 간(우엽)의 60% 정도를 떼 이식한다”며 “아이가 클수록 기증자의 간을 많이 떼야 하는 게 부담”이라고 했다.

카사이 수술과 간이식 수술 기술이 발전하면서 담도폐쇄증을 가진 아이들의 생존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두 치료 모두 환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것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카사이 수술은 1959년 일본에서 개발됐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수술을 받은 아이들의 30% 정도는 1~2년 안에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인 교수는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간이 망가지는 아이들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소장 장내미생물 환경을 분석하고 항체 등 면역계를 분석해 간이 나빠지는 원인을 찾고 있다.

○담도폐쇄 아이라면 조기 진단 중요

간이식 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수술한 직후엔 고용량 면역억제제를 써야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폐렴 등 각종 감염성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신장이 망가지고 성장에도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 건강을 살피면서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담도 막혀 고통받는 아이들에 '새 간' 선물…카사이 수술 권위자

이런 만큼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질환을 예방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찍 찾을수록 간 기능을 많이 보전할 수 있다. 이식해야 하거나 다른 합병증 등이 생길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는 의미다. 담도폐쇄 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데 가장 유용한 지표는 변 색깔이다. 아이의 변 색깔이 점차 하얗게 바뀐다면 의심해야 한다. 과거엔 엄마들이 아이를 여러 명 낳아 변 색깔이 이상하면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최근엔 아이를 한 명만 낳는 엄마가 많아 변 색깔이 이상해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이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매일 아이들 대변 색을 살피면서 변화가 있다면 빠르게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인 교수는 “기저귀나 분유 겉포장에 정상 대변 색깔을 알려주는 코팅카드 등을 붙여 조기 진단을 돕는 캠페인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담도폐쇄가 있으면 엄마들이 죄책감을 많이 느낍니다.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담도폐쇄로 태어나 간이 온전히 기능하지 못해도 성인이 돼 일상생활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보고 주치의를 믿어야 합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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