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몸값’ 1조2700억원(시가총액 기준) 규모 호주 조선·방위산업 업체인 오스탈 지분을 공개매수한다. 2021년부터 인수를 추진했지만, 오스탈 이사회의 거부로 막히자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방식을 바꿨다. 미국에 조선소를 보유한 오스탈을 앞세워 미국 함정 시장을 뚫기 위해서다.
◇ 3378억원 실탄 마련
1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의 호주 자회사인 ‘HAA №1 PTY LTD’는 오스탈 지분 공개매수를 위해 1억8000만호주달러(약 1655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오스탈 주식 9.9%를 주당 4.45호주달러에 인수하는 게 목표다. 전날 주식시장 종가 대비 16%가량 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이다.
이날 한화시스템은 2027억원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642억원을 유상증자 방식으로 HAA №1에 투입하겠다고 공시했다. 현재까지 HAA №1이 마련한 자금은 3378억원이다. 모두 지분 매입에 사용할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은 유상증자 참여 목적을 “발행회사를 통해 호주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스탈 시가총액은 13억9100만호주달러(약 1조2700억원)다. HAA №1의 자본금(3378억원)이면 시장가로 지분 약 26.6%를 확보할 수 있다. 호주 상법상 해외 투자자가 지분 1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선 호주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한화그룹은 이번 공개매수로 지분 9.9%를 우선 확보한 뒤 FIRB 승인을 얻어 19.9% 이상의 지분을 매입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되면 타타랑벤처스(17.09%)와 창업자인 존 로스웰 일가(7.64%) 등을 제치고 최대주주에 올라선다.
한화그룹이 오스탈 인수에 나선 건 2021년부터였다. 지난해 4월 오스탈에 약 10억2000만호주달러(약 8960억원)를 인수가로 제시했지만 같은 해 9월 최종 무산됐다. 당시 오스탈 이사회는 “한화가 호주와 미국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실사하려면 반환되지 않는 수수료 500만달러를 미리 내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오스탈 이사회가 “미국 회사와 컨소시엄을 짜면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등의 인수 조건을 내걸자 한화는 포기했다.
◇ “한화오션과의 시너지 클 것”
한화그룹이 적대적 M&A를 통해 오스탈 인수를 결정한 건 미국 진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회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뒤 한화그룹 경영진 사이에서 “미국 함정 시장에 반드시 진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인수 재추진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탈은 1988년 설립된 글로벌 선박 및 특수선 건조 업체다. 미국 해군의 연안 전투함인 LCS 생산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본사는 호주에 있지만 미국 앨라배마 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등 주요 사업은 미국에서 벌인다. 최근에도 미국 해군 관련 사업을 수주했다. 2022년 이후 미국 해안경비대로부터 33억달러(약 4조3500억원) 규모의 해안경비함 건조공사를, 미국 해군으로부터는 1억5600만달러(약 2060억원)짜리 선박 2척의 건조 주문을 받았다.
한화그룹이 오스탈을 인수한다면 한화오션과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화오션은 군수함 잠수함 등 방산 특수선 건조 분야에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화오션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지만 단독으로 미국 함정 시장에 진출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차준호/박종관/성상훈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