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이들 6500명 사는 함안, 소아과 전문의 0명… 강남구엔 211명

22 hours ago 4

[벼랑 끝 소아의료]〈중〉 원정진료 내몰린 ‘소아과 무의촌’
“아이 아프면 차 몰고 인근 도시로”… 소아과 전문의 절반은 수도권 쏠림
‘1만명당 전문의’ 서울이 충남 2배… 전남선 기부금 모아 진료실 마련도

15일 오전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내과 ‘인제의원’에서 4개월 영아가 보호자 품에 안긴 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함안군은 0∼18세 인구가 6500명이 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명도 없다. 
함안=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5일 오전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내과 ‘인제의원’에서 4개월 영아가 보호자 품에 안긴 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함안군은 0∼18세 인구가 6500명이 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1명도 없다. 함안=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가 아플 때마다 병원 찾아 댕기는 게 힘들어가 이사를 가야 되나 싶어예.”

15일 경남 함안군 가야읍에서 중2 딸을 키우는 박모 씨(45)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에 사는 고충을 이렇게 말했다. 주변 엄마들은 자녀가 복통을 호소하거나 고열이 나면 동네 의원 대신 차를 몰아 인근 창원시의 큰 병원으로 간다.

함안군은 소청과 전문의가 아예 없는 전국 15개 시군구 가운데 만 18세 이하 인구(6523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20여 년 전 소청과 의원이 문을 닫았고, 4년 전부터는 소청과 공중보건의사도 맥이 끊기면서 전문적인 소아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소아과 무의촌’이 됐다.

1만 명당 전문의, 서울은 14명인데 충남은 6명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9곳 중 70곳은 활동 중인 소청과 전문의가 2명 이하였다. 사실상 소아과 무의촌이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30%나 된다는 뜻이다. 15곳은 전문의가 한 명도 없고, 33곳은 전문의 한 명이 지역 전체 소아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지역 간 격차도 상당하다. 전국 소청과 전문의 6504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237명(49.8%)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소청과 전문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강남구(211명)로, 소아과 무의촌 70곳의 전문의를 모두 합한 규모(77명)를 훌쩍 뛰어넘는다.

광역시도별로 보면 18세 이하 인구 1만 명당 소청과 전문의는 충남이 5.91명으로 가장 적었다. 이어 경북 6.02명, 전남(광주 통합 전 기준) 6.11명 순이다. 반면 서울은 14.36명으로 충남의 2.4배에 달한다. 소아과 무의촌 지역에서는 ‘원정 진료’가 일상이 됐다. 소청과 전문의가 0명인 전남 보성군의 보건소 보건행정과 담당은 “주민들은 자녀가 아프면 주로 광주 등 인근 대도시로 간다”며 “당장 소청과 전문의를 채용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단순한 발열이나 감염도 소아는 성인보다 중증으로 악화되거나 응급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 병원을 찾아다니며 가슴을 졸이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경남 하동군에서는 야간에 당직 의료기관이 소아 환자의 진료를 전담하지만, 소청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어 심층 진료가 필요하면 인근 진주시나 큰 도시로 이송을 보낸다.

기부금 모아 소청과 의사 모셔오는 지자체

무의촌이 된 지자체들은 소청과 전문의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남 곡성군과 영암군 등은 최근 ‘고향사랑 기부제’ 모금을 통해 소청과 전문의를 1명씩 데려왔다. 전남 담양군도 지난해 말부터 소청과 진료실 마련을 위한 지정 기부를 시작했다. 목표액 2억5000만 원 중 약 80%를 모금했지만 급여를 높여도 진료를 희망하는 전문의가 많지 않아 고민이다.

현장에서는 소청과의 낮은 수가와 지방의 열악한 정주 여건을 개선하지 않는 한 ‘소아과 사막화’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창 인제의원 원장(경남 함안군의사회장)은 “젊은 의사들은 가족과 함께 내려오기 힘들어 기러기 생활을 하다가 떠나거나 지방에서 개원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고 전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2024년 레지던트 20명, 전임의 55명, 전문의 42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59%는 ‘소청과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수가를 300% 이상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소청과 전문의 확보가 어려운 무의촌에서는 지역 거점병원과 협력 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거점병원도 소아 응급이나 소아 세부 진료과 등 충분한 치료 역량을 갖춰야 무의촌과의 원활한 협진이 가능하다. 함안군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하는 김모 원장은 “동네 병원에서 대학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은 아이가 상급병원에 이송돼도 입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권역별 거점병원에 세부 진료과별 전문의를 집중시켜 소아 응급 환자를 수용하고 이송 비용을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훈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학교실 교수(소아심장과)는 “지방 대학병원은 레지던트가 거의 없는 데다 인근 취약지 환자까지 쏠리면서 연구 실적을 채울 엄두도 못 낸다”며 “이를 못 버티고 떠나는 교수의 이탈을 막는 것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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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조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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