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장기연체채권 매입·소각 프로그램(배드뱅크)을 둘러싸고 전체 대상의 절반 이상이 공공기관 보유 채권인 것으로 드러나 형평성과 정책 실효성 논란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민간 금융권 출연금으로 공공기관 부실까지 정리한다는 지적과 함께 지원 대상에 외국인 포함 여부와 공공기관 채권 자체 소각 여부 등 세부 쟁점도 정치권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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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안내문.(사진=뉴스1) |
배드뱅크 탕감 대상 중 공공기관 채권만 54%
2일 이데일리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배드뱅크 매입 대상은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 연체채권으로 총 16조 3613억원(113만 4278명)에 달한다. 이 중 캠코와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 지역신용보증재단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채권은 8조 8462억원(54%)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캠코 자체 보유 채권이 4 조621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서금원이 2조 4556억원, 지역신보가 1조 364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간 금융권이 보유한 물량은 대부업(2조 3326억원), 카드사(1조 6842억원), 은행(1조 864억원), 상호금융(5400억원), 저축은행(4654억원), 캐피탈(2764억원), 보험(7648억원) 등을 모두 합쳐 7조 5151억원 수준이다. 전체 물량에서 민간금융권 비중은 오히려 적은 상황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추경으로 마련한 4000억원과 금융권이 부담하는 출연금 4000억원을 합해 총 8000억원 규모로 운영한다. 캠코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채권을 원금 대비 평균 5% 안팎의 할인율로 매입한 뒤 장기 연체자를 대상으로 채무조정·소각 절차를 밟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재원이 민간 금융권 부실 정리를 넘어 공공기관 부실까지 덮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출연금은 원래 금융사가 자기 부실을 줄이기 위해 내는 돈인데 공공기관 적자까지 덮어주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연체 기간도 논란은 이어진다. 전체 매입 대상 채권 중 최근 7년 연체 물량이 5조 3107억원(32.5%)으로 가장 많고, 8년(1조 6195억원), 9년(1조 1699억원), 10년(1조 2481억원)까지 포함하면 최근 7~10년 내 쌓인 물량이 절반 이상이다. 반면 30년을 초과한 초장기 연체는 전체의 0.2%(291억원, 4489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내세운 ‘장기·고질 채무자 구제’라는 정책 취지와 달리 실제론 최근 10년 내 발생한 연체를 한꺼번에 털어내는 성격이 더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배드뱅크 구조는 캠코의 과거 채권 매입 실적과도 연결된다. 캠코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시작으로 코로나19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등 비슷한 사업을 반복했지만 매입 후 재연체하거나 회수가 지연돼 일부 채권이 다시 장기화하는 문제가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사실상 ‘밀린 숙제’를 한 번에 정리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외국인 탕감 논란도…“과거 지원책도 외국인 지원해”
이에 국민의힘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캠코와 다른 공공기관 보유 채권은 자체 소각하면 정부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위는 “캠코는 국세청·국토부 등에서 소득·재산 정보를 직접 받아 동일한 심사 기준으로 일괄 정리할 수 있지만 다른 공공기관이 자체 소각하면 심사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또 공공기관 보유 채권은 대부분 미상각 채권으로 무상 소각 시 기관 재무건전성에 직접 타격이 가해져 결국은 별도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과거 국민행복기금·새출발기금 등도 똑같은 구조로 공공기관 채권을 캠코가 매입해 소각하거나 조정한 사례가 있다. 금융위는 “금융사와 공공기관 간 형평성을 맞추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매입 방식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외국인 지원 포함 여부도 쟁점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신용정보원 자료를 토대로 “지원 대상에 국적 불명 외국인 2000명, 182억원이 포함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과거 국민행복기금, 긴급재난지원금, 새출발기금 모두 영주권자·결혼이민자는 포함해 지원했다”며 “이번에도 원칙은 동일하고 난민 포함 여부는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등 최근 상황을 봐가면서 검토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단순한 소각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 부실 구조를 막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빚을 상환한 사람으로선 역차별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공공기관과 민간 금융권 채권을 계정을 나눠 관리하고 상환능력 심사를 엄격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