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혜진 국립오페라단장 "목표는 '국립의 캐스팅은 최고'라는 찬사"

1 day ago 5

“단장 지적 호기심 채우는 오페라는 끝났다"
“10배 많은 예산이면 10배 더 일하라는 뜻…네트렙코·무티 직접 설득 중”
‘전 직원 오페라 프리뷰’ 국오 체질 개선…“국립오페라단, S등급 만들 것”
국립오페라단 박혜진 신임 단장 인터뷰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국립이라는 우산 아래 안주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내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만난 박혜진 단장은 “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 무대에 세계 최고 스타들이 서지 않느냐는 의문을 늘 품어왔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박 단장의 언어는 직설적이었다. "단장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오페라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고, “국립은 실험실이 아니라 검증된 거장들이 최고의 무대를 완성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스타 캐스팅에 대한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테너 이용훈, 지휘자 김은선과 리카르도 무티 등을 직접 설득 중이라고 밝혔다. "에이전시가 아니라 아티스트 본인을 움직여야 한다"라며 "그들과 시차를 맞춰 연애하듯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오페라단 시절 3300석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매우며 '완판녀'라는 별명을 얻었던 박혜진은 이제 2300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전회차 전석 매진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의 시선은 단순한 흥행에 머물지 않는다. 박 단장은 국립오페라단을 "대한민국 문화 브랜드이자 국가 간 문화외교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중국 국가대극원(NCPA)과의 교류 확대, 한·중·일 성악가 프로젝트, 국민합창단 기반 야외 오페라 구상까지 이미 청사진이 구체적이다.

박 단장은 "서울시오페라단이 국립보다 10배 적은 예산으로 존재감을 증명했다면, 국립에서는 10배 더 일해서 10배 더 좋은 오페라단을 만들라는 것이 문체부의 뜻이자 내 사명이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다음은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과의 일문일답)

"첫 출근날부터 이름 박힌 사업자등록증…국립은 완전히 달랐다"

Q. 서울시오페라단에서 국립오페라단으로 자리를 옮긴 첫 ‘경력직 단장’ 사례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서울시오페라단에서 햇수로 5년을 일했습니다. 솔직히 광화문으로 첫 출근할 때는 발걸음이 참 가벼웠어요. 세종문화회관 산하 기관이다 보니 안호상 사장님이라는 든든한 우산이 계셨고, 저는 예술감독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죠

하지만 국립은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국립오페라단장으로 임명 받은 4월 6일부터 사업자등록증과 법인 등기까지 제 이름으로 다 바뀌어 있었어요. 결재 라인의 최종 종착지로서 모든 권한과 책임을 홀로 져야 하니, 첫 출근날부터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어깨가 저도 모르게 무거워졌습니다."

Q. 문화체육관광부가 본인을 임명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A. "그동안은 주로 연세가 많으신 공연계 어르신들이 오시던 자리였습니다. 저를 보낸 건 이 자리를 즐기지 말고 젊은 에너지로 역동적으로 발전시키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서울시 시절 10배 적은 예산으로 단체의 브랜드를 누구나 아는 수준으로 키워냈던 성과를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아요. '10배 많은 예산을 줄 테니 10배 더 일해라'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10배 더 좋은 국립오페라단으로 보답할 생각입니다."

Q. 전임 단장에 이어 특정 대학 출신이라는 점에서 인맥 중심 운영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A. "서울시오페라단 시절 평론가와 기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기분 좋은 찬사가 바로 ‘캐스팅 맛집’이었습니다. 작품을 위해 학연과 지연을 철저히 배제했기에 얻은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아주 큰 사람입니다. 동문 한 명 더 무대에 세운다고 그 사람이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 목표는 오직 ‘역시 국립의 캐스팅은 최고’라는 찬사입니다. 철저히 실력과 역할 적합성으로만 무대를 채우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샤넬도 끊임없이 혁신…국립이라고 안주할 수 없다"

Q. 취임 이후 국립오페라단 내부에서 가장 크게 느낀 문제는 무엇인가.

A.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국립이니까 꼭 돈을 벌지 않아도 되지 않나’라는 안일함이 조직 안에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올라가는 데 수십 년이 걸려도 떨어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샤넬이나 루이비통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도 끊임없이 혁신합니다. 국립오페라단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Q. 조직 체질 개선을 위해 '전 직원 오페라 프리뷰'를 도입한다고 들었다.

A. "직원들에게 '과연 오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행정을 하더라도 작품의 스토리와 배경 음악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곧 선보일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는 대중적으로 꽤 난해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전 직원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작품을 함께 공부하는 프리뷰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노조의 동의도 구했습니다. 관객의 감동을 사기 전에 조직원들의 체질과 마음부터 오페라 전문가로 바꾸겠습니다."

"단장 개인의 지적 호기심 채우는 오페라는 직무유기"

Q.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에 대한 철학이 확고해 보인다.

A. "사람들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자꾸 이분법적으로 나누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많은 대중이 찾아와 감동하고 좋아하는 작품이야말로 가장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라면 더 많은 국민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장 개인의 지적 호기심이나 제작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난해한 오페라는 지양해야 합니다."

Q. 국내 최초로 도전하는 바그너 링사이클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가.

A. "바그너의 4부작 '링 사이클'은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최초로 전편을 올리는 역사적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런 프로젝트일수록 완성도와 관객 설득력이 중요합니다.
국립은 처음 기회를 얻어 실력을 증명하는 실험실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거장들이 최고의 무대를 완성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한국 관객에게 바그너는 여전히 낯설고 생소합니다.

그런데 국내 초연 작품에서 연출가 개인의 이상향만 고집해 현대적 연출을 강요하는 건 '갓 태어난 아이에게 생고기를 구워 먹이는 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부터 완벽히 이해되고, 관객이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고전의 틀을 유지한 해석의 바그너를 선보이겠습니다."

"에이전시는 거들 뿐…네트렙코·무티 등 직접 설득 중"

Q. 세계적인 스타 아티스트 영입 공언이 화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A. "그동안 '왜 국립인데 세계 최고가 서지 않지?'라는 아쉬움이 늘 있었습니다. 저는 캐스팅할 때 에이전시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발로 뜁니다. 테너 이용훈,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를 섭외할 때도 그랬습니다. 콧대 높은 스타들의 일정과 내한 스케줄을 조율하기 위해 시차를 맞춰가며 연애하듯 직접 설득했습니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테너 이용훈을 국립오페라단의 작품에 출연시키기 위해 직접 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니지먼트사 스케줄은 꽉 차 있어도 아티스트 개인의 마음을 움직이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인 지휘자 김은선, 그리고 거장 리카르도 무티 역시 직접 접촉하며 설득 중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는 가는데 왜 한국에는 못 오느냐는 생각으로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반드시 성사시키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 국가대표 문화외교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

Q. 해외 교류 및 향후 추진할 핵심 사업은 무엇인가.

A. "최근 중국 국가대극원(NCPA)을 다녀왔는데 극장 시스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국가대극원이 주최하는 세계 오페라 포럼에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은 초청조차 받지 못했더군요. 왜 우리가 그 자리에 없었는지 솔직히 분했습니다. 직접 수뇌부를 만나 설득했고, 오는 11월 베이징 포럼 공식 초청도 따냈습니다. 체코 프라하의 유로파 포럼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1월 3일 국립극장에서 한·중·일 최고 성악가들이 함께하는 '베세토(BESETO) 프로젝트' 신년음악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오페라를 통한 국가 간 문화외교의 장이 열리는 꿈을 이제 국립의 이름으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Q. 야외 오페라, 어린이 오페라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A. "서울시오페라단 시절 광화문 야외 오페라를 통해 시민들과 굉장히 강하게 호흡했습니다. 덕분에 시민합창단에 참여했던 분들과 가족들이 오페라를 사랑하는 충성 관객이 돼 극장을 다시 찾는 선순환도 경험했어요. 국립에서도 국민합창단을 발족해 국립중앙박물관 계단 무대에서 역대급 규모의 야외 오페라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국립발레단 등 다른 국립 단체들과의 협업도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오페라가 어렵다는 인식을 고쳐드리고 싶어요. 세대를 넘어 공감이 가능한 교훈적 내용의 가족 오페라로 아이와 부모님, 가족들이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눈높이를 낮추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국립오페라단 단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중인 박혜진 단장 / 사진. 임형택 기자.

Q. 임기 3년 동안 어떤 단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A. "현재 국립오페라단은 문체부 경영평가에서 B등급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반드시 S등급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외부 법률·경영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영자문위원회도 구성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성과보다 더 욕심나는 건 사람의 마음입니다. 취임 후 가장 어린 직원부터 시작해 34명 전 직원과 일대일 점심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만의 고민을 들어주고 제 능력이 닿는 한에서는 함께 해결좋은 리스너이자 좋은 해결사가 되고 싶습니다. 언니, 이모, 누나, 엄마의 마음으로 직원들과 소통할 겁니다. 3년 뒤 임기를 마칠 때 모든 직원이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단장이 되는 것, 그것이 제게 가장 아름다운 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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