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포 통장 19개로 60대男에 9억 뜯어낸 스캠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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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여성’이라 속여 친밀감 쌓고
“수익 좋은 쇼핑몰 해보라” 꼬드겨… 돈 떼인 뒤 보니 ‘유령 회사’ 계좌
동결 대상 아닌 ‘스캠’ 연루 통장
범인 잠적에도 여전히 입금 가능

“사기범은 1년 넘도록 못 잡았는데 대포통장은 아직도 입금이 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충남 천안시에 사는 이상원(가명·60) 씨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는 연애 빙자 사기(로맨스 스캠)로 시작된 쇼핑몰 사기에 3개월 만에 9억3000만 원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스캠 조직은 끝내 잡지 못했다. 지난달 17일 동결된 줄로만 알았던 사기 계좌에 100원을 보냈더니 정상 입금됐다.

이 씨는 곧바로 은행에 동결을 요청했다. 그러나 “로맨스 스캠에 쓰인 통장 동결은 경찰이 요청해야 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경찰은 출금은 막았지만 입금까지 막긴 어렵다고 했다. 허탈한 이 씨의 눈에 들어온 건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히든: 검은돈의 혈관, 대포통장’ 시리즈. 이 씨는 “나를 속인 이들도 추적할 수 있느냐”며 간절한 심정을 드러냈다.

● 대포통장 19개로 9억 쓸어간 스캠 조직

이 씨의 인생은 ‘37세 김지민(가명)’이 접근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김 씨는 지난해 1월 22일 셀카 사진과 전남 목포시 집 주소 등을 보내며 이 씨와 친밀감을 쌓아갔다. 이후 그는 “해외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수익률이 좋다”며 이 씨를 ‘쇼핑몰 사기’의 늪으로 꼬드겼다.

스캠 조직은 쇼핑몰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이 씨를 속였다. 홈페이지에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이 씨가 물품 도매가를 조직이 정해준 계좌로 보냈고, 고객에게 배송이 완료됐다고 뜨면 이 씨는 보낸 돈의 130%를 수익금으로 돌려받았다. 초반엔 약속대로 수익금이 들어왔다. 지난해 2월 19일 30만 원을 보냈고 이틀 뒤 42만 원을 받았다. 하루에 적게는 3번, 많게는 10번씩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 건마다 100만 원 이상으로 원금이 점차 커졌지만 수익금을 매번 받았다.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한 번에 보내야 하는 액수가 500만 원을 넘자 이 씨는 “그만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조직은 “지금껏 투자한 원금에 대한 수익금을 받으려면 세금 등을 처리해야 한다. 보증금 5만 달러(약 7500만 원)를 보내라”고 했다. 이 씨는 집 담보대출에 지인 돈까지 끌어다 보증금을 냈다. 이후 조직은 가짜로 만든 쇼핑몰 홈페이지를 폐쇄한 뒤 잠적했다. 그제야 이 씨는 사기를 눈치챘다.● 스캠 사기 대포통장 동결하려면 법 개정해야

이 씨가 돈을 보낸 계좌는 총 19개. 이 중 12개는 법인 통장으로 지역 농협 등에서 만들어졌다. 계좌주 명의의 회사 등기를 떼어보니 한 회사는 이 씨가 입금하기 일주일 전에야 만들어진 ‘유령 회사’였다. 이 씨는 지난해 5월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충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1년 가까이 수사한 뒤 대포통장 19개 중 2개의 명의 제공자를 특정해 송치했다. 그 외 명의 제공자나 스캠 조직 등은 특정하지 못한 채 4월 10일 이 씨에게 수사 중지를 통보했다.

이 씨의 말처럼 조직은 법망을 빠져나갔지만 대포통장은 여전히 입금이 가능한 상태였다. 현행법상 로맨스 스캠 사기에 쓰인 통장은 보이스피싱과 달리 동결 대상이 아니어서다. 금융위원회는 스캠 사기 등에 쓰인 통장도 동결할 수 있도록 지난달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지만 은행이 이를 따를 법적 의무는 없다. 이를 의무화할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찰대 금융범죄분석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단서 조항을 둔 건 대한민국밖에 없다.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피해자의 권익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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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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