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인정서도 텃세·따돌림”…경로당 7만개지만 노인 93%는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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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경로당의 그늘
노인들 포용할 열릴 공간이지만
텃세·노폭에 노인들 외면
전국 이용률도 매년 급락

동빙고 경로당 앞에 한 어르신이 뒷짐을 진 채 바라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동빙고 경로당 앞에 한 어르신이 뒷짐을 진 채 바라보고 있다. [이충우 기자]

# 충북 청주의 이정선 할머니(93·가명)는 지척에 있는 동네 경로당을 두고 20분 넘게 떨어진 경로당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11월 가족과 함께 이사를 온 후 새 경로당을 찾았지만 고령이라는 이유로 첫날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 말벗이 필요한 이 할머니는 결국 이사 오기 전 동네 경로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박영한(78·가명) 할아버지는 경로당을 찾아본 적이 없다. 박 할아버지는 “경로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너무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며 “아직 가족들이 곁에 있으니, 경로당을 선택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노인 인구 1000만명 시대가 열렸지만 이들을 위한 공간인 경로당의 그늘은 더 짙어지고 있다. 노인들을 품어주는 사랑방 역할은 고사하고 초고령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경로당은 7만여 곳에 달한다. 시니어들을 위한 거대한 복지 인프라다. 늘어나는 노인 1인 가구의 고립을 막고 이들의 교류를 책임지는 사회 안전망이기도 하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예산도 한 해 600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노인들이 경로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어르신 모두를 위한 공간이어야 할 경로당이 ‘왕따’와 ‘노폭’ 등으로 얼룩지며 안식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사람이 아니면 가차 없이 배척하는가 하면, 공금을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한다. 열악한 시설과 안전 문제로 신음하는 곳도 적지 않다. 정부는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여가활동 욕구 증가, 사생활 중시 문화 등으로 경로당을 외면하는 시니어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신(新)노년 세대가 등돌리면서 머지않아 경로당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실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노인 인구 대비 경로당 이용률은 약 7%(2024년 10월 기준)에 불과했다. 전국적으로도 경로당 이용률은 2008년 46.9%에서 2023년 26.5%까지 급락 추세다.

최 의원은 “노인들을 위한 포용적 공간이어야 할 경로당에서 갈등과 따돌림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어르신들이 사회적 고립에 내몰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국가 차원에서 경로당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봉화 = 차창희 기자, 서울 = 김정범 기자,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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