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20억 사기 부부' 돌연 석방…"경찰에 뇌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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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를 받는 강모 씨(31)와 그의 아내 안모 씨(28). 이들은 이성에게 접근해 주식·코인 투자를 유도하는 '로맨스 스캠' 수법으로 102명에게서 12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지난 2월 3일 캄보디아에서 체포됐으나 최근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독자 제공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를 받는 강모 씨(31)와 그의 아내 안모 씨(28). 이들은 이성에게 접근해 주식·코인 투자를 유도하는 '로맨스 스캠' 수법으로 102명에게서 12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지난 2월 3일 캄보디아에서 체포됐으나 최근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독자 제공

"4만 달러 내면 데리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사기꾼 강모 씨가 지난 5월 지인에게 보낸 메시지)

120억원 규모의 피싱 범죄를 저지르다 캄보디아에서 체포된 사기꾼 부부가 돌연 석방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경찰은 이들이 풀려난 배경에 현지 고위 관료와의 뇌물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국 송환을 앞두고 인터폴 적색 수배자들이 풀려나면서 양국 간 국제공조 체계가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에 4만 달러 건네고 '석방'

17일 경찰에 따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를 받아 캄보디아 현지 경찰에게 붙잡힌 강모 씨(31)와 그의 아내 안모 씨(29)가 최근 풀려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부부는 지난 2월 3일 인터폴 적색수배 상태에서 현지에서 체포돼 지난 5월까지 구금돼 있었다.

이 부부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대규모 사기 조직의 핵심 일원으로, 울산경찰청이 쫓고 있었다. 이들은 이성에게 접근해 주식·코인 투자를 유도하는 '로맨스 스캠' 수법으로 102명에게서 약 120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다른 사기 조직이 캄보디아 경찰에 뇌물을 건네고 이들 부부를 인계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강씨가 지난달 캄보디아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해 "현재 프놈펜 경찰 정보국에 있다"며 "직접 와서 4만 달러를 내면 바로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캄보디아 경찰이) 돈을 내 줄 회사를 찾으라고 한다"며 "일해서 갚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경찰에게 대신 돈을 주고 자신을 풀어주면, 또 사기를 쳐서 해당 금액을 갚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20억대 사기 혐의를 받는 강모 씨(31)가 캄보디아에 있는 지인에게 텔레그램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캄보디아 경찰에게 4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건네고 자신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사진=독자 제공

120억대 사기 혐의를 받는 강모 씨(31)가 캄보디아에 있는 지인에게 텔레그램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캄보디아 경찰에게 4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건네고 자신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이다./사진=독자 제공

캄보디아 경찰관의 연봉 중간값은 880만원 수준이다. 4만 달러(약 5500만원)가 전달됐을 경우 현지 경찰은 연봉의 6배가 넘는 거액을 챙긴 셈이다. 캄보디아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4년 부패인식지수에서 180개국 중 158위(20점)를 기록할 정도로 공권력의 청렴도가 낮다.

강씨·안씨 부부의 석방 정황이 포착되자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은 다급히 이들과의 면회를 요청했다. 하지만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이를 거부했다. 또 캄보디아 주재 경찰영사가 부부의 소재에 대해 질의하자 현지 경찰은 "잘 있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수사본부장까지 방문했지만…변화 없다?

캄보디아는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 등 한국인을 겨냥한 각종 사기 범죄의 신(新)거점으로 떠오른 동남아 국가다. 우종수 전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해 캄보디아 경찰청 디 비체 부청장과 고위급 회의를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선 현지에서 벌어지는 사기 범죄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취업 사기 등에 대한 대책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 전 본부장이 현지를 방문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지난 3월 "한국에 체류 중인 캄보디아 국적의 반정부 인사 A씨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강씨·안씨 부부 송환과 관련해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경찰청은 캄보디아 측의 요구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협상에 진전을 보지 못하는 동안 결과적으로 한국 경찰은 부부사기단을 송환하는 데 실패했다.

캄보디아 경찰이 이들을 한국에 인도하지 않고 풀어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2009년 캄보디아와 범죄인인도협정을 체결해 2011년부터 발효 중이다. 범죄인인도협정은 양국에서 법률과 똑같은 효력과 지위를 갖는다.

울산경찰청은 이 협정에 따라 수개월 전 부부의 송환을 외교 경로를 통해 공식 요청했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직접 범죄인 인도 청구 문서를 들고 현지 수사당국 관계자들을 찾아 빠른 인도를 촉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럼에도 캄보디아 당국은 이를 무시한 셈이다.

○같은 경찰들도 韓 공조체계 '불신'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도 국제공조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캄보디아 거점 주식투자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범죄자를 잡아도 한국으로 보내주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체포되길 바라는 심정"이라며 "인터폴 수배자의 송환까지 1년 가까이 기다려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엔 강원경찰청이 추적하던 한국인 피싱 조직원 15명이 캄보디아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 모두 현지에서 풀려나 다른 범죄조직으로 이동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강씨·안씨 부부가 법정에 서기만을 기다렸던 피해자들은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 대표 이모 씨는 "정부가 즉각 외교 채널을 가동해 사기꾼 부부의 송환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나서야 한다"며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피해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더는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들 중엔 극단적 선택을 한 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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