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민주주의는 폭력 아닌 투표로 나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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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민주주의는 폭력 아닌 투표로 나라 바꾼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임박했다. 대한민국이 탄핵 찬성과 반대로 두 동강 났다. 찬탄, 반탄 두 국민 집단이 헌재 앞에서 차벽으로 갈라져 절규하고 있다.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대치하고, 정치는 여야로 대립하고, 국민은 찬탄·반탄으로 나뉘어 고함치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원인은 정치다. 가깝게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방탄 정치’, 멀리는 여야의 극한 대립 정치에 있다. 정치는 권력을 향한 쟁투다. 권력 추구 인간 본성을 제거할 수 없으니 정치인을 제도로 제어하고, 투표를 통해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다.

민주주의 모범국 미국도 대립 정치의 수렁에 빠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버락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을 두고 “비토크라시(vetocracy)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진단을 낸 것이 2013년이다. 하지만 양당의 대립은 이미 1993년 본격화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 직후 공화당 원내 총무 로버트 돌 상원의원이 “전통적인 허니문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필리버스터를 ‘재앙적 수준’으로 늘리면서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을 기술하며 그 만신창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정치에서 상대에 대한 상호 관용이 사라지고 대립 정치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무렵이다.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며 상대 당을 향한 적대감이 쌓이고 여야 타협이 줄었다. 결정타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었다. 상대가 청산 대상이기에 ‘정치’가 소멸했다. 윤 대통령이 마주한 민주당의 줄특검, 탄핵 질주 기저에는 적대감과 타협 거부가 있다. 탄핵은 그 종착점이다. 그런 야당에 맞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역시 상대를 타협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정치력 부족의 후과(後果)다.

이제 국민이 둘로 쪼개졌고, 나라는 유사 내전 상태다. 헌재가 내리는 판결에 승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분열과 내전을 종결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폭력으론 나라를 바꾸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항상 선거라는 다음이 있는 게임이다. 투표로 바꿔야 한다. 트럼프 암살 시도 다음 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미국에서는 갈등을 투표로 해결합니다. 우리는 총이 아닌 투표로 행동합니다”고 연설했다.

최근 원로들이 대결 정치 해소를 위해 개헌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수개월 내 개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는데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이재명 대표가 개헌에 미온적일뿐더러 통치 구조 개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여론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하지만 중임제는 국정 효율성 확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재임을 위한 포퓰리즘 재정 살포, 3선 개헌 위험이라는 단점도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핵심으로 언급되는 ‘국회 추천 총리제’는 실은 내각제 전 단계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 추천 총리가 갈등하면 파국이다.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치를 맡는 개헌은 시대착오다. 미국과의 관세 분쟁 대응처럼 내치와 외치, 경제와 외교가 구분되지 않는 시대에 국정 책임이 모호해진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회로 그 권한을 넘기는 것이 바람직한 개헌인지도 의문이다. 지금 국회의원 자질과 국민 신뢰도로 봐선 100년 후에나 가능해 보인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내각제 도입이나 국회 권력 강화를 대통령 권력 분산으로 포장하는 개헌은 개악이 될 수 있다. 과거 아홉 차례 개헌 가운데 여섯 차례가 대통령 임기 관련 개헌이다. 대통령 임기나 통치 제도를 손본다고 여야 대립이 개선되지 않는다. 여야의 극한 대립은 통치 구조 개헌, 선거제 개편, 타협의 정치 문화 등 다차원 접근이 필요하다. 속도전식 개헌은 안 된다.

헌재 판결이 어떻게 나든 폭력으론 나라를 바꿀 수 없다. 다음 선거에서 정의로운 지도자에게 투표해 사회 갈등을 해결하고 나라를 새롭게 바꾸는 게 민주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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