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통증도, 독감도 막지 못한 안세영의 투혼...여왕은 역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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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위 전영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서 왕즈이 꺾고 우승
최악의 컨디션 딛고 끈질긴 버티기로 역전승 일궈내
"온갖 감정 떠올랐지만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 등록 2025-03-18 오전 12:00:00

    수정 2025-03-18 오전 12:00:00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누군가는 ‘셔틀콕 여제’ 안세영(23·삼성생명)의 강점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타고난 수비력을 칭찬한다.

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안세영을 잘 아는 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안세영의 진짜 무기는 바로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라고 강조한다.

안세영이 전영오픈 배드민턴 대회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왕즈이를 이긴 뒤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포효하고 있다. 사진=AP PHOTO

안세영이 배드민턴 종목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오픈에서 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결승전을 앞두고 다시 찾아온 다리 통증도 그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17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왕즈이(중국·2위)를 게임스코어 2-1(13-21 21-18 21-18)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들어 단 한 경기도 패하지 않고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를 잇따라 제패한 안세영은 전영오픈마저도 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올해 출전한 국제대회 4개를 모두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 들어 20연승 무패행진 중이다.

안세영은 이번 대회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모두 꺾었다. 32강에서 가오팡제(중국·15위), 16강에서 커스티 길모어(스코틀랜드·33위), 8강에서 천위페이(중국·13위), 4강에서 야마구치 아카네(일본·3위)를 차례로 제압했다. 이어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까지 눌렀다.

사실 왕즈이와 결승전은 쉽지 않았다. 상대도 상대지만 안세영에게 문제가 있었다. 야마구치와 4강전에서 2게임 도중 허벅지 통증이 찾아왔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오른쪽 무릎, 파리 올림픽에서 발목을 다쳐 고생했던 아픔이 다시 떠올랐다. 4강전까지 순항을 이어가던 안세영이 결승전에서 유독 몸이 무겁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도 부상 여파 때문이었다.

게다가 안세영은 독감까지 앓았다. BWF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안세영이 결승전을 앞두고 독감에 걸려 평소 움직임과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소개한 뒤 “하지만 95분 뒤 그는 ‘전영 오픈의 여왕’임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안세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른쪽 허벅지에 테이핑을 하고 코트에 나선 그는 1게임을 13-21로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2게임부터 특유의 끈질긴 수비가 빛났다. 왕즈이의 스매싱을 계속 받아넘기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6-6 동점 상황에서 무려 79차례 랠리 끝에 따낸 점수는 이날 그가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안세영이 극적으로 점수를 가져오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영국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안세영의 투혼에 왕즈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2세트 중반부터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반면 안세영은 허벅지 통증 때문에 가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악착같이 버텼다. 3게임 마지막 21점을 따내 우승을 확정짓고 나서야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참았던 세리머니를 시원하게 쏟아냈다.

안세영은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코칭스태프와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그는 BWF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늘 경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2세트에서 온갖 감정이 떠올랐지만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계속 뛰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오늘 경기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줬고 내 커리어에 큰 의미가 있다”며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전영오픈은 1899년에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배드민턴 대회다. BWF가 1977년 별도의 세계선수권대회를 창설하기 전까지 사실상 세계선수권대회였다. 안세영은 지난 2023년 한국 선수로는 27년 만에 여자 단식 정상에 올랐다. 안세영 이전에 1981년 황선애. 1986년 김연자, 1996년 방수현이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야마구치에게 준결승에서 1-2로 패했던 안세영은 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전영오픈에서 단식 2회 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는 남녀 통틀어 안세영이 유일하다. 한국 배드민턴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해 파리올림픽 이후 내부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던 한국 배드민턴은 올해 전영오픈에서 큰 성과를 이뤘다. 남자 복식에서는 서승재-김원호(이상 삼성생명)조가 인도네시아의 레오 롤리 카르나도-바가스 마울라나 조를 2-0(21-19 21-19)으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이 전영오픈 남자복식에서 우승한 건 2012년 이용대-정재성조 이후 13년 만이다. 2012년 선수로 정상을 맛봤던 이용대는 이번 대회 초빙 코치로 대표팀과 함께 하며 후배들의 성공을 기뻐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전영오픈에서 두 개 이상 금메달을 수확한 것은 2023년 안세영이 여자단식, 김소영-공희용조가 여자복식에서 우승한 이후 2년 만이다.

전영 오픈 배드민턴 대회에서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한 안세영이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A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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