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안부를 묻는것이 소설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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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안부를 묻는것이 소설의 일"

'가를 두고' 출간 백가흠 작가
치매 아내 간병하는 노인 등
상실·고독 그린 단편 8편 담아
뒤늦게 찾아온 상실의 감정은
그것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줘
삶의 복원과 연속성 가능케 해

단편 소설집 '가를 두고'를 최근 출간한 백가흠 작가. 문학과지성사

단편 소설집 '가를 두고'를 최근 출간한 백가흠 작가. 문학과지성사

홀로 강원도 시골 마을에 살며 과거를 반추하는 한 장년 남성이 있다. 그에게 삶은 숙제와 같았다. 먹고사는데 꼭 필요한 일만 했다. 사랑은 회피했고, 관계엔 무심했다. 여동생의 자살, 어머니의 암투병, 아버지의 횡사. 남자는 뒷전에 두었던 가족의 삶을, 그들의 사후에야 복기한다. 그리고 마주 대한다. 후회만 반복하는 자신의 얼굴을.

시간의 지층에 무심히 퇴적된 기억을 헤집는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재난이 닥쳐온다. 거대한 산불로 마을은 불길에 휩싸인다. 대피하는 그의 눈에 노파가 들어온다. 나만 살겠다고 누렁이를 두고 왔다며 노파는 불길로 뛰어든다. 그 순간 유예됐던 남자의 감정은 한꺼번에 폭발한다. 연착된 상실과 애도의 감각은 곧 눈물로 응결돼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백가흠 작가의 단편 '가를 두고'에서 그려진 '상실과 애도의 시차'다. 최근 매일경제와 서면으로 만난 백 작가는 이에 대해 "우리는 시간을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흐르는 것으로만 인식하지만 우리 마음, 기억 속에서는 다르다"며 "수십 년 전의 과거도, 어제의 일도 우리 마음속에서 순식간에 같은 크기의 기억으로 복원된다"고 말했다.

표제작과 함께 총 8편의 단편 소설을 엮은 그의 6번째 소설집 '가를 두고'(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최근 출간됐다. 2001년 단편소설 '광어'로 등단한 그는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2005),'조대리의 트렁크'(2007), 장편소설 '아콰마린'(2024) 등 사회 주변부와 국가 권력을 오가며 폭력과 부조리로 찬 세계를 날것의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아들의 실종이란 지옥의 시간을 견디며 치매를 앓는 아내를 간병하는 노인('석별'), 가족 해체로 뿔뿔이 흩어져 살다 조지아에서 죽은 아버지의 삶을 뒤늦게 쫓는 중년 여성('우다브노에서 아침을') 등 '잔혹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놓지 않는다.

다만 이번 소설집의 시선은 대체로 사건 이후에 머문다. 작중 주인공들은 누군가의 죽음이나 부재를 즉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떠난 이들도 자신과 같은 시간 속에서 각자의 기쁨을 누리고, 슬픔을 견디며 살았다는 사실을. 다만 자신은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상실이나 이별에 대한 감정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복원과 연속성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 모든 것이 삶의 지면 안에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결국 상실의 감정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슬픔보다 여전히 '있음'의 증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 중 대부분은 코로나19의 여파에서 갓 벗어난 2022년 전후로 발표됐다. 희대의 전염병으로 한국 사회가 집단적 '탈상'을 겪은 직후다. 망자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이 즐비한 세상. 필멸자로서 상실을 받아들여야 할 숙명을 진 인간에게 소설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소설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어요. 묻는 일. 그게 소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인 것 같아요. '어떤 이에겐 이런 일이 있는데, 너는 괜찮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런 질문 말입니다. 그런데 괜찮냐고,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안부에 위안이 클 때가 있잖아요. 그게 소설의 일 같이 느껴져요.

2017년부터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맡고 있는 그도 어느덧 데뷔 25년 차 작가다. 상아탑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병행 중인 그에게 지나간 시간의 의미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그가 말한 '소설의 일'처럼 담백한 말이 돌아왔다.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쌓인 시간은 그저 노회해지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바람이 있다면, 지금처럼 계속 쓰고 싶습니다. 진행 중인 작품을 마무리하고, 준비하고 있는 장편소설도 계획대로 쓸 수 있는 체력이 주어지면 좋겠어요."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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