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행법상 노인연령은 65세입니다.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기초연금, 지하철 무임승차, 법적 정년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모두 노인연령과 얽혀있기 때문에 쉽사리 그 기준점을 움직이기엔 한계가 있죠.
하지만 그로부터 44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노인연령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에서는 우리나라 노인연령을 70세까지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난 9일 나왔습니다. 대한노인회, 고령사회연구원, 교수, 한국소비자연맹 등 민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70세’라는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070년엔 10명 중 4.4명이 노인
44년간 유지돼오던 노인연령을 이제는 올려야 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유례없는 속도의 고령화입니다.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될 당시 66세 이상 인구의 비율은 전체의 3.9%에 불과했습니다. 해당 비율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20%를 넘겼죠.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비율이 14%에서 20%로 넘어가기까지, 즉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기까지 7년밖에 걸리지 않은 나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중은 지난해 20%에서 2050년 34%, 2070년에는 44%까지 증가할 전망입니다. 지금은 15~64세인 생산연령인구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이지만, 207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대한노인회, 한국노년학회,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한국소비자연맹 등의 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올 2월부터 노인연령에 대한 전문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미래세대의 부양부담을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인연령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기”라고 말하며 정부차원의 지원사격도 예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차례의 회의 끝에 노인 연령기준을 단계적으로 70세까지 상향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노인 연령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1. 노인 연령기준을 단계적으로 70세까지 상향하여야 한다. 노인의 건강 수준, 사회적 인식, 노년부양비, 경제 활동 참여율 등을 고려해 노인 연령기준을 지속적으로 검토 및 조정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2. 소득 단절이 없도록 주된 일자리 고용 기간을 연장하고, 노인이 역량과 필요에 따라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3. 고령자의 경제활동 여건을 고려하여 연금 가입연령 및 수급연령을 단계적으로 상향해야 한다.
4. 지하철 무임승차 등 경로우대제도의 노인 연령기준을 상향하되, 소득, 재산, 지역 등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5. 노인 연령기준을 상향해도 보건의료와 장기요양서비스는 건강상태와 돌봄 필요에 따라 보장해야 한다.
2025년 5월 9일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위원장), 송재찬 대한노인회 사무총장, 강은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장,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용균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회장 이윤환 한국노년학회 회장, 석재은 한림대학교 교수, 이지현 이데일리 기자
연금 수급연령, 계속고용 맞물려 논의 必
다만 앞에서도 말했듯, 노인연령 상향은 단순히 노인에 대한 정의를 바꾸는 작업에서 나아가 연금, 정년 등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복지 기준점을 바꾸는 사안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높고 노후준비도 불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연령 상향이 자칫 복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제도별로 시급성, 사회적 수용성, 제도 간 연계성 등을 고려해 신중하고,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노인 연령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먼저 연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은 63세인데 2033년까지 65세로 조정될 예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2048년까지 수급연령을 68세로 상향하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안이 바로 법적 정년입니다. 법적 정년은 60세인데, 연금 수급연령을 68세까지 올려버리면 그 사이 소득 단절이 생겨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제안한 ‘2033년 65세까지 계속고용 단계적 의무화’ 방안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달 경사노위는 정년을 맞은 근로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의무화하는 ‘계속고용의무제도’ 제언을 발표했고,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번 제언을 토대로 하반기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제도는 희망하는 근로자에 한해 자동적으로 재계약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고령자들에게 정년 이후에도 일한 만큼의 성과를 기초로 적정한 임금을 받으며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무임승차 등 먼저 적용될 가능성…복지 사각지대는 막아야
경로우대제도는 어떨까요? 경로우대제도란 65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이나 고궁, 박물관 등의 공공시설 이용 요금을 무료 또는 할인해 주는 제도를 뜻합니다.
정부 안팎에 따르면 새로운 노인연령을 가장 먼저 적용하게 될 분야가 바로 경로우대제도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금, 정년 등의 사안보다는 상대적으로 쟁점이 덜 복잡한 데다 노인연령과 관련해 상징성이 있는 제도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하철 무임승차나 철도 할인 등의 경로우대 혜택 기준을 올해~내년부터 매년 1세씩 높여 65세에서 70세로 조정하는 방안도 가능합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경우 연령에 따라 차등 적용하거나 지방자치단체 여건에 따라 노인연령상향 수준이나 경로우대제도 운영의 자율성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9일 사회적 제안문 이후 다음 스텝은 어떻게 될까요? 사회적 제안문은 사실상 첫 단추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 4월 출범한 범부처 협의체의 가동도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등이 포함돼있습니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보니 국회도 움직여야겠죠.
전문가들은 “이번 사회적 제안문이 65세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보다 젊고 건강하며 긍정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며 “노인연령 상향을 통해 절감된 재정의 일부는 불이익이 예상되는 인구 계층에 대한 지출로 확보해 복지 사각지대를 예방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