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3년째 '철통 보안'으로 유지되는 노벨상 수상자를 대중들보다 한 발 먼저 알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도, 패널도 아니다. 한 초상화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스웨덴 작가 니클라스 엘메헤드다. 엘메헤드는 2012년부터 모든 노벨상 수상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한림원의 노벨상 발표와 함께 모든 출판물, 신문, 인터넷 등에 게시되는 얼굴 그림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한림원이 각 수상자의 사진 대신 엘메헤드의 그림을 쓰는 건 보안 때문이다. 발표 직전이라 할지라도 사진을 미리 촬영하며 발생하는 수상자 기밀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엘메헤드의 그림을 쓰기 전인 2012년까지 수상자를 발표하며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사진을 사용한 것도 모두 한림원의 치밀한 기밀 유지 때문이다.
또 물리학, 화학 등 과학 분야 수상자들의 고해상도 사진을 손에 넣는 것이 어려워 그림을 사용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실제 엘메헤드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연구실에만 머무는 과학자들의 고품질 사진을 얻는 건 매우 어렵다”며 "인터넷에 그들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구소 직원 페이지에서나 겨우 찾아낸 저해상도 사진들만 나오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엘메헤드는 한림원으로부터 수상자를 미리 전달받은 후 그들의 사진을 바탕으로 초상화 작업을 한다. 이번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얼굴을 그린 그림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엘메헤드는 노벨상 수상자의 초상화를 그릴 때 색을 사용하지 않고 검은 선만 사용해 드로잉을 한다. 얼굴 드로잉 위에는 금빛 색감이 입혀지는데, 이는 물감이 아니다. 실제 금을 그림에 올린 금박 작업이다. 엘메헤드는 2016년 초상화까지는 금박을 칠하지 않고 검은 드로잉만 내놓았다. 하지만 2017년부터는 적당한 색감이 필요하다고 느낀 엘메헤드가 금을 입히는 작업을 추가하며 현재의 초상화가 완성됐다.
물감 대신 실제 금을 입힌 시도 또한 그의 수많은 실험이 낳은 결과다. 엘메헤드는 “여러 금색 페인트로 많은 실험을 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그러다 그림에 쉽게 붙일 수 있는 매우 얇은 금속 호일인 금박에 빠지게 됐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엘메헤드는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얼마나 먼저 알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각 초상화를 완성하는 데 2~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