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판도라의 상자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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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판도라의 상자가 되지 않으려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는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절대 열어서는 안 될 상자를 주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가 그것을 열자 질병·전쟁·재앙이 세상으로 퍼져 나갔고, 맨 아래에는 ‘희망’만이 남았다. 이 비유처럼 ‘판도라의 상자’는 한 번 열리면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을 뜻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함께 담고 있다.

이제 우리 앞에도 판도라의 상자가 하나 열리고 있다. 바로 최근 공포되어 2026년 3월 10일 효력이 발생되는 노란봉투법이다. 그러나 법 제2조의 정의 규정을 개정하며 사용자와 노동쟁의 개념만을 확대해 놓고, 이로 인해 발생할 실무적 잴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법 시행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조차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부 지침이나 매뉴얼을 통해 구체화하겠다고 하지만, 개정된 노란봉투법에서는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위임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부의 어떤 지침이나 매뉴얼이 만들어지더라도 법적 근거가 없어 행정부의 해석에 불과하다. 노동부의 지침(매뉴얼)이 만들어지더라도 수많은 쟁점사항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정확한 답변을 제시하더라도 노사 어느 한쪽이 반발하며 불복할 가능성이 크고, 2026년 3월 10일 이후 줄소송이 이어질 위험도 존재한다.

이미 노란봉투법이 개정되고 시행이 예정된 이상, 최소한 다음 사항만이라도 보완입법을 통해 현장의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

# 사용자 개념의 추상성 - 기준 제시 필요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면서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 표현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어느 정도의 지배력, 결정력을 가져야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법률에서 일정한 판단기준을 제시하거나, 시행령 위임 근거를 남겨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 교섭창구단일화 혼란 – 시행령으로 명확히 정비 필요
현행 노동조합법은 교섭요구가 들어오면 교섭창구단일화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원청 노조, 하청 노조 전체를 교섭창구단일화를 해야 하는지, 하청 노조들만 교섭창구단일화를 해야 하는지, 교섭요구를 한 특정 하청업체 소속 노조들만 교섭창구단일화를 하면 되는지 아무런 기준이 없다. 특히, 실질적 지배력 판단은 교섭 안건 별로 달라질 수 있는데, 현행법은 교섭요구시 교섭 안건 기재 의무조차 없다(시행령 제14조의2). 따라서 교섭창구단일화 부분은 노란봉투법 시행시 곧바로 대혼란이 발생하므로, 노동부 지침이나 매뉴얼이 아니라 시행령 수준에서라도 명확한 절차와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법 시행 직후 대혼란은 불가피하다.

# 사용자 개념 확대 적용범위 – 단체교섭으로 한정 필요
사용자 개념을 정의 조항에서 규정하여 노동조합법 전체에 확대된 사용자 개념이 적용된다. 노란봉투법에 의하면 확대된 사용자 개념이 법 전반에 적용되는데, 형식적으로는 근로시간면제자(제24조), 쟁의행위 기간 중 임금지급 면제(제44조) 등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원청 사업주와 하청 노조 간 관계에서 이런 규정이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따라서 사용자 개념 확대를 전체 노조법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단체교섭에 한정하여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등 적용 범위를 명확히 조정해야 한다.

# 실질적 지배력 판단 절차 – 기간 연장 및 별도 절차 마련 필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는 단기간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지를 판단해 교섭 응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행법령상으론 교섭요구시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은 노동위원회에 시정요구를 하고, 노동위원회는 10일 이내에 결정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사용자나 노동위원회가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려면,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는 기간을 확대하거나 별도로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해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 노동쟁의 범위 확대 – ‘밀접성’ 등 요건 명문화 필요
노동쟁의의 범위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확대되었다. 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사업경영상 결정이 아니라 ‘정리해고와 같이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근로조건의 변경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했지만, 노란봉투법에서는 ‘밀접한 관련성’이나 ‘필연성’에 대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노동부의 보도자료나 매뉴얼만으로 노동쟁의행위 범위가 노동부 견해처럼 한정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자의적 해석 여지를 줄이기 위해 명확한 요건을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지금 상태로 시행된다면 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 맨 밑에 희망이 남아 있듯, 남은 6개월 동안 최소한의 보완입법이라도 이뤄진다면 시장의 혼란을 줄이고 제도의 성공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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