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개봉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분리독립 선언 자치주들에
군대 공습 명령하는 대통령
가상의 미국 배경 얘기지만
균열로 두쪽 나뉜 현실 풍자
백악관 잠입하는 기자들 사투
숨막히는 긴장에 몰입도 최고
대통령이 발포(공습)를 명령하고, 정부군과 시민군이 맞서 싸운다. 내전(內戰)이다. 총으로 무장한 시민군들이 정부군에 대항하자 지자체는 분리독립을 선언한다. 대통령의 명령이 서서히 힘을 잃는데 그를 따르는 건 소수의 강경파와 경호처 직원들뿐이다. 승패의 결과는 이제 알 수 없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 기막힌 상황이,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다양한 의미에서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가 없는'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다. 앨릭스 갈런드 감독의 '시빌 워: 분열의 시대'다. 내전이 벌어진 가상의 미국 사회라는 도발적 설정부터 눈길을 끄는 작품인데, 극단적인 분열 탓에 둘로 갈라진 세상이란 점, 대통령에게 포위당한 시민군과 시민군에게 포위당한 대통령이란 점에서 현실 정치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측면이 적지 않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패스트 라이브즈' 등을 전 세계에 배급해 미국에서 가장 떠오르고 있는 배급사인 A24의 '최초 상업영화 블록버스터'란 점에서도 시네필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은 둘로 완벽하게 갈라져 있다.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Western Forces·WF), 그리고 나머지 19개 주가 뭉친 플로리다 연합(Florida Alliance·FA)이 분리독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은 군대에 공습을 명령하고, 미국 전역엔 탱크와 전투기와 헬기, 그리고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깔린다. 미국 사회의 공공 인프라와 시스템은 전면 마비됐다. 맨해튼 거리는 완전히 쑥대밭이 됐고, 뉴욕의 야경은 폭음과 연기로 그을려 버렸다.
영화는 전쟁의 포연 속에서 로이터통신 종군기자 '리'에 카메라를 맞춘다. 리는 동료 종군기자인 '조엘', 그리고 스물세 살짜리 풋내기 기자 '제시' 등과 함께 마지막 취재를 완성하기로 다짐한다.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고 시도해볼 엄두조차 내보지 못했던 '그 취재'가 이제는 필요하다고 공감해서다.
그건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의 대통령 인터뷰'였다.
시민뿐 아니라 기자가 백악관 근처만 가도 무차별적으로 총질을 해대는 미국에서, 그들의 아이디어는 아무리 베테랑 종군기자라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건 '반드시 해내야 하는 마지막 취재'였다.
'PRESS'가 적힌 흰색 지프차를 타고 뉴욕의 종군기자들은 1200㎞ 밖에 위치한 도시 워싱턴DC로 향한다. 그러나 그 길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사지였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삶과 죽음이 엇갈리고, 시체 구덩이에서 걸어 나와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이 그들 눈앞에 펼쳐진다. 시민군(서부군)은 자신을 쏘아대는 저격수에게 총질을 해대지만 문제는 그 상대 저격수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이란 점이다.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가 선을 넘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인 기자의 눈을 통해 내전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동요하는 눈빛에 카메라 렌즈를 고정시켜서다.
링컨 기념관에 포탄을 쏟아붓고 워싱턴 기념탑 위로 수백 대의 헬기가 이동하는 후반부 장면은 장관이다. 총성 이후 기자들이 느끼는 '멍한' 정적조차 긴장감을 끌어올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막힌다.
마침내 종군기자들이 서부군과 함께 백악관 정문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에선 두 손을 맞잡고 보게 만든다. 대통령은 그 안에 있을까, 있다면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한마디(인터뷰)는 과연 어떻게 기록될까. 이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 곳곳의 내전 상황을 미국화(化)한 느낌이 강해, 영화는 그 자체로도 심각한 내상과 심적 균열을 안긴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측면에서도 종군기자를 사실적으로 다룬 교과서적인 느낌이 든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 '나이트 크롤러' 등 저널리즘 관련 영화와 비견할 만하다. 특히 백악관 내부에서 종군기자들의 취재 과정은 흠결이 없어 객석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12월 31일 개봉.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