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데려가서…" 여직원 성희롱 이유로 해고당한 男 결국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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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원 3명, 사내메신저로 여직원 외모 품평
비공개 대화방이지만…적나라한 성희롱 발언도
회사에서 권고사직처리 되자 소송 제기
1심 "배공개 사적 영역…수위 높지 않아" 해고 무효
2심 "사내메신저는 사적 영역 아냐" 1심 뒤집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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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남자 직원끼리 외부에 공개가 되지 않는 업무 메신저로 다른 여직원들에 대해 외모 품평이나 성적 발언을 한 것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권한 없이 메신저를 들여다본 여성 직원이 성희롱을 폭로했어도 징계 사유가 된다고도 봤다. 업무 메신저를 통해 이뤄진 만큼 '사적 영역'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기업 질서와 조직 문화는 물론 대외적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성희롱 외부 유출에 대해선 법원이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가전제품 판매 분야 대기업 직원 A씨 등 3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한 1심을 뒤집었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A씨와 B씨와 계약직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C 등은 소속된 팀의 계약직 알바 직원을 대상으로 메신저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권고사직 처분을 받게 됐다. 이들의 행각은 피해 계약직원이 C의 사내 메신저를 들여다보면서 적발됐다. 계약직에겐 사내 포털 접속 권한이 부여되지 않아 C가 알바직원에게 아이디 등을 공유해 줬는데, 이를 통해 C의 메신저에도 접속한 것.

해당 알바직원은 A씨 등이 자신과 다른 알바직원 등 2명에 대해 "키가 크다" "26살이래" "상큼하다"며 외모 품평을 하거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공유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한달 후에도 A씨 등은 "내가 데려가서 취집시킨다" "세수(성행위의 은어)하고 싶다""먹겠다"는 성적 발언을 한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다른 피해 알바직원에게 알렸다. 이를 전달받은 직원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나에 대한 섹드립이 난무했다" "앞에선 착한 척 회식하자 한다"며 A씨 등을 저격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들의 행각이 드러난 것.

결국 권고사직 처리된 이들은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하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정서 A씨 등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직접 계약직원에게 언어적 행위를 한 게 아니라 사적 공간서 나눈 대화"라며 "4개월 사이에 3차례의 대화를 했던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 이어 "계약직원이 보안규정을 위반하고 사생활 침해해 발생한 것으로 외부 유출의 책임이 A씨 등에게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권고사직은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하여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사내 메신저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해야 접속할 수 있어서 대화 내용은 원칙적으로 제3자가 알 수 없고, 대화 내용이 60일 이후 삭제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생활 영역의 성격도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성희롱성) 대화는 약 4개월간 3차례 이뤄진 것에 불과하고 직접 피해자들에게 어떤 언어적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며 "피해자들이 지인들에게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을 알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피해자들의 지인들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알게됐어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권고사직 처분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봤다.

하지만 2심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는 1심을 뒤집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 등은 대화 내용이 노출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성희롱 발언 수위가 매우 높고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며 "계약직 근로자들에 대한 지도감독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성희롱 발언을 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비위의 정도가 중하다"고 판단했다.

사적 대화라는 주장에 대해선 "사내 메신저는 업무 수행을 위해 제공되는 것으로 주된 용도는 업무적인 부분"이라며 "메신저 대화가 사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온전히 사생활의 영역으로 보호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라고 1심 법원과 정 반대 판결을 내렸다. 이어 "피해자들이 대화 내용을 알게 된 경위를 참작해도 '비위의 정도가 약한 경우'에는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다.

한편 서울행정법원 11부는 최근 전직 국세청 직원 A씨가 국세청장을 상대로 “파면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A씨가 동료 남자 직원들에게 “(다른 여직원이) 모델 같다” “저희 서에 예쁜 여직원이 많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며 최근 원고 승소 판결을 한 바 있다. 이를 접한 남자 직원들이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고 볼 수 없고, 이 발언이 당사자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성희롱이 되는 '성적 언동'은 직접 피해자에게 성적 굴욕감을 준 경우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방법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경우도 포함한다"며 "특히 사적 영역에서의 발언이어도 사내 매체를 통해 이뤄지거나 외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공개된 경우엔 회사에 피해가 갈 수 있으므로 징계사유가 된다는 본 판단이라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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