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주목받는 주장이 있습니다. 남성의 불안은 20대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늘 있었던 문제이고, 그건 심각한 사회 구조적 문제의 결과라는 거죠.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선 어려움을 겪는 소년과 남성의 문제에 이제라도 주목해야 한단 주장인데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반페미니즘과는 결이 전혀 다른 새로운 남성 문제 해결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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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게 이어진 학력 격차
학교 교육에서 남학생은 여학생에 크게 뒤처져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이를 보여주죠. 2003~2023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항상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많았습니다.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과목, 모든 학년에서 늘 그랬습니다.
수학·과학은 남학생이 더 잘하지 않냐고요? 특정 시험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학교 성적, 즉 내신 점수를 비교한 이 연구논문에선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녀 학생 간 성적 차이는 언어 과목이 가장 크고 수학·과학 과목이 가장 작긴 했지만, 그래도 여학생 우위는 한결같았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뒤처지는 게 최근에야 나타난 일이 아니란 겁니다. 의무교육이 도입됐을 때부터 줄곧, 그것도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거죠. 인터넷·게임·스마트폰이 생겨나기 전부터요.
오랫동안 이런 성별 학력 격차는 무시돼왔습니다. 과거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을 땐 이런 격차가 눈에 띄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상승했고, 이제 대부분 선진국에선 남성보다 높습니다. 한국에서도 2005년 남녀 대학 진학률이 역전된 뒤, 격차가 유지되고 있죠.
교육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자살률이 훨씬 높고, 알코올이나 약물을 과다복용하거나 노숙자가 되거나 산업재해로 사망할 위험이 더 크죠. 심지어 기대 수명도 여성보다 훨씬 짧고요. 기대수명 차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것 아니냐고요? 하지만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저소득층일수록 더 크게 벌어집니다. 이건 평등의 문제이기도 한 거죠.
가족과의 단절 역시 남성이 겪는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아버지는 아이에게 덜 중요한 ‘2등 부모’로 취급되기 일쑤죠. ‘라테 파파’로 유명한 북유럽에서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성보다 낮습니다. 많은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말합니다. 그동안은 이를 여성의 문제(과도한 육아 부담)로 봤지만, 이건 동시에 남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1년 입학유예가 해법?
위 내용은 제 의견이 아니고요.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미국 소년·남성연구소 소장인 리처드 리브스의 저서 ‘소년과 남성(Of Boys and Men, 2022년 출간)’과 노르웨이 정부 남성평등위원회의 방대한 최종 보고서 ‘평등의 다음 단계(2024년 발간)’에 공통으로 담긴 주장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상당히 큰 관심을 끌면서 논쟁을 유발한 주장이기도 하죠.요약하자면 남성은 다양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요. 이건 사회 구조를 바꿔 해결해야 할 큰 문제입니다. 마치 페미니스트들이 수십 년에 걸쳐 시스템을 개선해 온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분노만 한다고 뭐가 바뀌나요. 좀 더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죠. 그동안 제시된 여러 정책 대안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남학생 초등학교 1년 입학 유예
모든 나라에서 남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떨어져 있습니다. 그건 지능 차이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성별에 따른 IQ 차이는 없다고 보고 있죠. 차이 나는 건 전두엽의 발달 속도와 이에 따른 학교 적응 기술입니다. 유치원을 졸업할 즈음에 남자아이들은 주의력, 지시 따르기, 정리정돈 같은 능력에서 여자아이들보다 1년 가까이 뒤처져있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요? 리처드 리브스 박사의 이 주장은 가장 주목받는 해결책인 동시에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대놓고 특정 성별을 낙인찍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단 반응도 있었죠. 하지만 미국 부유층에선 실제 남학생들에게 이미 많이 쓰고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 역시 초등학교 입학 유예가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보다 확 늘리자고 정부에 제안했죠. 지금은 입학 유예를 극소수만 택하지만, 부모들이 더 쉽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단 겁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일단 유치원을 1년 더 다니는 남자아이들이 대거 늘어날 거고요. 그럼 유치원 교사 수와 교육 예산도 모두 늘려야 하니까요.
②더 활동적·실용적인 교육과정
낮은 학업성취도와 낮은 대학 진학률은 더 많은 실업과 건강·중독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남학생의 학교 성적을 끌어올리는 게 매우 중요한 이유인데요.
고쳐야 하는 건 남학생이 아니라 교육과정입니다. 100년 전부터 줄곧 여학생 성적이 높게 나왔다는 건 학교 교육이 절대적으로 남학생엔 불리하단 뜻이니까요. 이게 바로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가 강조하는 점인데요.
③남성의 더 많은 돌봄 일자리 진출
성별 때문에 특정 직업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과거 남성 일색이었던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하는 건 우리 사회가 장려해 온 일이죠. 그럼, 그 반대도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더 많은 남성 간호사, 더 많은 남성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교사 말이죠. 리처드 리브스 박사가 ‘HEAL(의료·교육·행정·문해)’이라고 부르는 직종인데요.
노르웨이에선 공공부문 일자리(교사, 공무원, 공중보건 간호사 등)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은데요. 이는 여성 임금 수준이 낮은 이유이지만, 대신 실업 위험이 낮고 치명적 사고 발생 가능성도 작다는 장점이 있죠. 육아를 위한 지원도 더 잘 돼 있고요. 남성들이 이런 일자리로 더 많이 진출한다면 지금의 많은 문제들(정신·신체적 건강과 가정에서의 소외)도 줄어들 겁니다.
참고로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 정책 제안 중엔 한국에서라면 여론이 뒤집어질 만한 내용도 담겼습니다. 여학생 비중이 매우 높은 분야의 전공을 지망하는 남학생에겐 대학입시에서 가산점을 주거나 성별 쿼터제(할당제)를 실시하자는 거죠.
논쟁은 시작됐다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전 세계 정치의 화두가 된 지금. 남성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다루는 이런 주장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점점 많아집니다. 당연히 비판은 거세고 논쟁은 뜨겁습니다. ‘남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본 전제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죠. 임금도 남성 근로자가 훨씬 높고, 고위직에도 온통 남성뿐이라는 명백한 통계를 두고 ‘남성 불평등’이 웬 말이냐는 반응인데요.여기서 생각할 점. 양성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남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것과 여성의 임금 수준을 높이는 건 함께 추구할 일이지, 어느 한쪽을 위해 반대편을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르웨이 남성평등위원회 설명대로 “소년과 남성의 평등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평등 정책이 약화하는 게 아니라 강화되는 겁니다.”
양극화된 시대, 공격은 양쪽에서 쏟아집니다. 보수 우파는 리브스의 해법(예-남성의 돌봄 직종 진출)이 전통적 성역할과 거리가 멀다며 싫어하죠. 반대로 좌파는 이런 논의가 반페미니즘 분위기와 젠더 분열을 부추길 거라며 경계하고요.
논란 속에서도 진전은 있습니다. 지난해 영국 의회는 남학생의 낮은 성취도 문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죠.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여성 정치인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는 젊은 남성의 고등교육·기술교육 진학률을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을 약속했습니다. 소녀와 여성을 지원해 온 자선가 멜린다 게이츠(빌 게이츠 전 부인)는 미국 소년·남성연구소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고요.
다음번 미국 대선에선 아마 남성 평등 정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겁니다. 한국에선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을 놓고 몇 년째 각자 입맛에 맞게 해석하기 바쁜데요. 이제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
측은지심과 인류애. 기사를 쓰면서 이 두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다른 이의 어려움을 서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만 있다면, 지금과 같은 젠더 갈등도 없을 텐데 말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전 세계적으로 ‘20대 남성의 보수화’가 화두입니다. 이를 두고 남성의 어려움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이는 해결해야 할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시각이 대두합니다. 노르웨이 정부의 ‘남성평등위원회’는 이에 대한 정책 제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남학생은 늘 학교 교육에서 뒤처져왔습니다. 이는 어른이 된 뒤 실업, 중독, 건강 문제와 연결되죠. 고쳐야 할 건 남학생이 아니라 학교 교육입니다. 남학생에 불리한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잔 주장도 나오죠.
-양극화된 시대, 우파와 좌파 모두에서 비판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논쟁이 시작됐으니 그것만으로 큰 진전입니다. 한국 정치권도 남성 평등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이 기사는 6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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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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