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가을이었다. 중2병을 세게 겪던 그 시절, 난생 처음 의정부라는 도시에 갔다. 당시 패션병 말기 환자였던 내가 그곳을 찾은 이유는 ‘형광 95 맥스’를 직거래로 사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안전 결제도 없고, 판매자 온도(당근 마켓 내 판매자 평가 시스템) 같은 것도 없었다. 혹시 무서운 형들이 우르르 몰려오지 않을까. 두려움에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가 지하철 기둥 뒤에 매복시켰다. 도대체 에어맥스라는 신발이 뭐였길래, 이 소년은 그렇게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일까.
보이지 않는 기술, 에어의 시작
에어맥스란 신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에어’라는 기술부터 봐야 한다. 재미있는 건 이 기술의 출발점이 나이키 내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의 나이키는 미국 내 러닝 붐을 타고 빠르게 성장하던 신진 스포츠 브랜드에 가까웠다. 그 무렵 나이키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NASA 엔지니어 출신 M. 프랭크 루디였다.
새턴, 아폴로 프로젝트에서 로켓 엔진 관련 업무를 했던 그는 “폴리우레탄 막 안에 가스를 가둬 충격을 흡수하는 아이디어를 신발 쿠셔닝에 적용해보자”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신발 밑창 안에 작고 질긴 공기주머니를 넣자는 발상이었다. 요즘에는 너무 당연한 기술이지만, 운동화가 미드솔의 폼과 고무로 충격을 흡수하던 당시에는 꽤 낯선 아이디어였다.
나이키는 이 아이디어를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1978년 호놀룰루 마라톤에서 에어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신발 테일윈드를 선보인다. 다만 이때의 에어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노출된 형태는 아니고 밑창 안에 숨어 있었다. 착용하면 느낄 수 있지만 가시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마법 같은 기술이었다. 나이키 입장에서는 이 좋은 기술을 소비자들이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파리의 이단아가 열어준 작은 창
보이지 않던 에어를 밖으로 끄집어낸 사람이 바로 팅커 햇필드다. 오늘날에는 나이키 역사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이름이지만, 팅커는 처음부터 신발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오리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1981년 나이키에 입사했을 때는 사무실과 매장 공간을 디자인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이 이력이 중요하다. 팅커는 처음부터 운동화를 다른 관점에서 봤다. 그는 구조와 공간을 보는 사람이었고, 안과 밖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디자이너들이 미드솔 안에 무엇을 넣을까를 고민할 때, 팅커는 왜 그것을 꼭 안에만 넣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팅커 햇필드의 이러한 생각에 결정적인 영감을 준 곳이 파리였다.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한 그곳에서 팅커의 시선을 붙잡은 건, 우아한 궁전도 고풍스러운 성당도 아니었다.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등이 설계한 퐁피두 센터였다. 처음 퐁피두 센터가 공개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특히 파리의 품격을 망치는 흉물이라는 말이 많았다.
건물 안에 얌전히 숨어 있어야 할 철골, 배관, 에스컬레이터, 설비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팅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가능성을 봤다. 감춰야 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구조가 오히려 건물의 얼굴이 될 수 있다면, 신발의 기술도 숨기지 않고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에어를 눈에 보이게 노출한 것은 단순한 디자인적 요소는 아니었다. 팅커는 쿠셔닝을 높이기 위해 더 큰 에어 유닛을 넣고 싶었고, 그러려면 미드솔의 일부를 덜어내야 했다. 더 나은 기능을 위해 구조를 바꾸니 그것이 디자인이 됐고, 이렇게 노출된 기술이 신발의 정체성이 됐다. 에어맥스 시리즈의 노출된 에어는 이 신발이 무엇이 다른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부차적인 마케팅 메시지 없이도 제품 자체만으로 기능을 설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물론 나이키 안에서 이 아이디어가 박수만 받은 건 아니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Abstract: The art of design>을 보면 내부의 반대가 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밑창을 뚫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신발이기에, 당시 기준으로 약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소비자가 불안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팅커 햇필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데이비드 포랜드 같은 나이키 에어 기술팀의 인물들이 있었다. 이들은 팅커의 과감한 디자인이 허황된 상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기술적으로 뒷받침했다. 즉 에어맥스는 한 명의 천재가 갑자기 그린 예쁜 신발이 아니라, 디자인적 고집과 집요한 기술에 대한 고민이 맞물려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기술이 욕망이 되고, 욕망이 문화가 되기까지
마침내 1987년 3월 26일, 에어맥스 1이 세상에 나왔다. 밑창 옆에 난 작은 창문을 통해 에어가 보이는 최초의 나이키 신발이었다. 지금 보면 너무 익숙한 디테일이지만, 당시에는 급진적인 디자인으로 이슈가 됐다. 운동화가 자신의 속살을 보여준다는 것과 쿠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바꾸는 것은 단순한 디자인 변화가 아니었다.
즉, 에어맥스는 기술을 기능의 영역에만 가둬둔 것이 아니다. 기술을 욕망의 영역으로 끌고 왔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신발이 편하다는 후기만 듣고 구매하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보며 스스로 납득시켰다.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이 나이키 에어고, 이것이 내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이유라고.
사실 오늘날 에어맥스는 쿠셔닝 측면에서 최고의 운동화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출시된 지 어느덧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개선된 사양의 스니커즈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에어맥스는 나이키가 기술, 기능성이라는 신발의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 판매하고 마케팅해야 하는지 깨달은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좋은 기술을 적용하는 것과 그 기술을 사람들이 갖고 싶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에어맥스는 이 둘을 연결했다. 보이지 않던 기능을 보이는 상징으로 바꿨고, 상징은 곧 문화가 됐다. 이후 에어맥스는 러닝화의 영역을 넘어 거리로 나왔고, 음악과 패션, 스니커즈 수집 문화의 중심이 됐다.
지금도 20여 년 전 의정부역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친구들과 손에 땀을 쥔 채 거래 상대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때 우리는 팅커 햇필드도, 퐁피두 센터도, 프랭크 루디도 몰랐다. 폴리우레탄 튜브 안에 가스를 가둔 기술 같은 건 더더욱 몰랐다. 다만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던 부분도 있다. 이 신발의 에어는 다르다. 이 작은 창문 안에는 다른 신발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안에는 NASA의 항공우주 기술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와 파리 퐁피두 센터가 남긴 디자인적 충격, 회사 안의 반대를 뚫고 나간 디자이너의 고집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이게 만들겠다는 브랜드의 의사결정이 있었다.
오늘 신발장에 있는 에어맥스를 한 번 꺼내어 밑창 옆의 투명한 창을 괜히 한 번 들여다보자. 그 안에 든 건 공기만이 아니다. 남들이 당연히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끝내 보여주고 싶어 했던 마음이다. 에어맥스는 그 마음이 제품이 되고, 제품이 문화가 된 순간이었다. 어쩌면 20여 년 전 의정부역에서의 그 유난스러운 첫 거래도 그 마음에 홀린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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