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말러의 교향곡, 루체른에서 울려퍼지다

3 weeks ago 9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함께 루체른 페스티벌의 예술적 철학을 이끌었던 피에르 불레즈는 예술 작품이 결코 고정된 최종 형태에 머무르지 않으며, 언제나 새롭게 전개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며 <열린 결말 (Open End)>의 철학을 피력한 바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고품격 교향악 축제 <루체른 여름 페스티벌>은 올해의 키워드 ‘열린 결말’이 담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8월 12일부터 5주간 이어지는 100여 개의 공연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KKL Luzerne 공연장 외관 / 사진. © 박마린

KKL Luzerne 공연장 외관 / 사진. © 박마린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페스티벌의 말러 전통을 확립했다. 그의 뒤를 이은 밀라노 출신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아바도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말러 교향곡 사이클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또한 페스티벌 감독 미카엘 해플리거의 마지막 임기이기도 하다. 그는 아바도와 함께 시작한 말러 사이클을 완결지으며 자신의 임기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말러의 <교향곡 10번>만큼 열린 결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말러의 마지막 불꽃 <교향곡 10번>

구스타프 말러는 1910년 여름 <교향곡 제10번>을 구상했으나, 첫 악장 아다지오만을 완성하고 나머지는 스케치로 남겼다. 당시는 그가 아내 알마의 외도와 극심한 혼란 속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상담을 이어가고 있던 시기였다.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쿠크는 1960년 말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미완의 작품을 연주 가능한 판본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알마는 처음에는 재구성에 반대했으나, 비공개 녹음을 들은 뒤 눈물을 흘리며 “그 속에는 너무나 많은 말러가 담겨 있다”고 인정했다. 그녀는 결국 1964년 세상을 떠나기 전 판본을 승인했고, 같은 해 런던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후 쿠크의 판본은 여러 차례 수정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방대한 초고에 근거한 실질적인 연주판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까지도 <교향곡 제10번>의 전곡 연주는 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레너드 번슈타인과 피에르 불레즈는 아다지오 악장만을 연주했으며, 일부 지휘자들은 재구성 판본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미완성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말러의 마지막 창작 상태를 드러내며, 음악 자체의 긴장과 균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데릭 쿠크는 그 불완전한 연결 부분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었다. <교향곡 제9번>과 <대지의 노래>가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면, <교향곡 제10번>은 삶의 혼란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는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대면인 것이다.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말러의 열린 결말, 루체른에서 완성되다

8월 15일 KKL 대공연장, 리카르도 샤이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페스티벌의 공식 개막 무대에 올랐다. 2016년부터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온 샤이는, 이번 개막 무대에 심혈을 기울였다. 공연에 앞서 그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피에르 불레즈를 기리는 메시지와 함께, 루체른 페스티벌 현대음악 아카데미의 전통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불레즈의 업적을 언급하며, 스트라빈스키를 추모하며 쓴 <Mémoriale (1985) pour flûte et huit instruments>를 첫 곡으로 소개했다. 호른 두 대, 바이올린 세 대, 비올라 두 대, 첼로 한 대의 편성 속에서 플루트 솔로가 섬세하게 울려 퍼지던 실내악 작품은, 불레즈가 평생 주창해온 예술 철학 ‘열린 형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했다.

개막 공연은 무엇보다 말러의 <교향곡 제10번>에 포커스 했다.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쿠크는 1960년 말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연주 가능한 판본을 마련했고, 이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다양한 무대에서 그 정당성을 입증해왔다. 루체른 페스티벌은 이번 개막에서 이 재구성판을 선택했다. 미완의 작품이 무대 위에서 완결된 형식으로 울려 퍼진다는 점은, 아바도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말러 사이클을 샤이가 이어받고, 미카엘 해플리거의 26년 임기를 의미 있게 마무리한다는 상징성을 더하면서, <열린 결말(Open End)>이라는 올해의 테마는 단순한 철학적 모토를 넘어, 생생한 메시지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와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와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 페스티벌의 개막 무대에서 샤이가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제10번>은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혼돈과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삶과 대화를 이어가려는 듯한 말러의 음악을, 샤이와 오케스트라는 치밀한 긴장과 에너지로 직조해냈다. 아다지오는 교향곡 제9번의 종결을 연상시키면서도, 샤이의 해석으로 새로운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올랐다. 이어진 스케르초, 푸르가토리오, 두 번째 스케르초에서는 유머와 불안, 격동과 아이러니가 교차하며 긴장감을 이어갔고, 마지막 악장에서 오케스트라는 묵시록적 절정을 거쳐 마침내 연약하면서도 빛나는 평온에 도달하는 여정을 설득력 있게 완성했다.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엘리나 가랑차, 뤼케르트 가곡에서 드러낸 말러리안의 정수

1901년 여름, 말러는 뤼케르트의 내성적인 시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일곱 편의 시를 곡으로 옮겼다. 이 가운데 세 곡은 훗날 <어린이의 죽음을 그리는 노래>로, 나머지는 <뤼케르트 가곡집>으로 포함되었고, 1902년에는 다섯 번째 곡이 추가되었다. 그중 네 곡은 피아노와 관현악 두 버전이 존재하며, 아내 알마를 위해 쓴 <만일 당신이 아름다움 때문에>는 피아노 버전만 존재한다.

이후 이 곡은 다른 음악가들에 의해 관현악으로 편곡되었다. 비록 함께 출판되었지만, 말러가 이를 연가곡으로 구상한 것은 아니었고, 각 곡은 독자적인 성격을 지닌다. <내 노래를 엿듣지 마시오!>는 창작의 비밀스러움을 경쾌하게 표현하고,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었네>는 섬세한 실내악적 친밀감을 드러낸다. <나는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는 고요하고 응축된 내적 고백으로, <만일 당신이 아름다움 때문에>는 개인적 사랑의 감정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처럼 뤼케르트 가곡집은 절제된 언어와 음악으로 내면과 시적 세계를 탐구한 말러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는, <교향곡 10번>에 앞서 연주된 <뤼케르트 가곡>에서 우아한 자태와 넉넉한 미성으로 청중을 매혹시켰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부터 섬세하게 균형 잡힌 사운드를 이끌어내던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봉은, 성악이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빛나도록 배려했다.

특히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었네>에서는 실내악적 분위기를 염두에 두면서, 성악 솔로가 절제된 표현과 내면적 깊이를 전할 수 있도록 했다. 다소 빠른 템포로 관현악과 성악이 교차하던 <한밤중에>는 작품의 백미를 이루었으며, 이어진 <만일 당신이 아름다움 때문에>와 <나는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에서는 꾸밈없는 사운드와 절제된 표현으로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세계 오페라 무대를 누비는 프리마돈나 가랑차는 이번 뤼케르트 가곡을 통해 진정한 말러리안으로 거듭났다.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 페스티벌 2025 | 8월 15일 | LFO(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공연 모습 / 사진제공. © Manuela Jans/Lucerne Festival

루체른=박마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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