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걷다가 이혼·낙선·아들 마약까지...65년생 정치엘리트 “지금이 가장 행복”[디너위드MK]

6 days ago 7

마약퇴치 전도사 변신한 남경필 ‘은구(NGU)’ 대표

33세 정계 입문해 5선
경기도지사까지 승승장구
꽃길만 걸던 인생이었지만
10년간 고통 밀려오기도

마약치유단체 ‘은구’ 설립
마약퇴치 전도사로 새인생
돌아보면 지금이 가장 행복

매일경제와의 맛있는 인터뷰 ‘디너위드MK’의 두 번째 주인공은 유력 정치인에서 마약 퇴치 전도사로 변신한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NGU)’ 대표다. 그는 33세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배지를 처음 달고 5선 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경기도지사까지 꿰차며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6년 전 정계 은퇴를 선언한 후 지금은 기업가이자 사회활동가로 진로를 완전히 틀었다. 매경이 지난달 말 그를 만나 인생 항로를 바꾼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가 단골집으로 꼽은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시고로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가 단골집으로 꼽은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시고로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1995년 5월, 중간고사를 마친 예일대 대학원생 남경필은 학교 앞 피자집 ‘셀리스’를 찾았다. 셀리스에서 그가 주문한 음식은 얇게 썬 조갯살을 브로콜리 등 야채와 함께 올린 ‘클램(조개)피자’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남 대표가 꼽은 단골집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양식 레스토랑 ‘시고로(SIGOLO)’다. MBA 유학 시절 예일대가 위치한 미국 동북부 뉴헤이븐의 대표 음식 ‘클램피자’는 그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담백하고 신선한 그 맛을 잊지 못했는데, 6년 전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뉴헤이븐은 19세기 말 이탈리아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를 시작해 뉴욕에 정착하지 못하고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정착한 곳이에요. 뉴헤이븐에서 리틀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거리에는 맛있는 피자집이 즐비해 있죠. 시고로는 그 맛을 제대로 구현했어요. 예일대 한국 동문 모임도 이곳에서 종종 갖습니다.”

클램피자는 조개·가리비 등 해산물과 브로콜리·애호박·레몬을 넣어 상큼하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피자에 비해 치즈량이 적고 도가 얇다. 미국 동부 바닷가에 인접한 뉴헤이븐의 지역적 특성 때문에 조개가 주원료로 활용됐다.

이 밖에도 식탁에는 클램차우더(조개 크림 스프), 대구볼 튀김, 부라타 샐러드, 타코, 빠에야가 순서대로 올라왔다. 남 대표는 이곳에서 꼭 맛봐야할 3가지 음식으로 클램피자, 빠에야, 갈치파스타를 꼽았다. 이경호 시고로 오너 셰프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멕시코·스페인·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들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시골 요리가 우리 식당의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30·40대 한창 시절 남경필은 ‘정치 금수저’라고 불릴 만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정치 인생을 살았다.

“남경필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오렌지족인데요. 당시 세간의 평가에 어떤 느낌이셨나요?(기자)” “오렌지까지는 아니고 ‘낑깡(금귤)’ 정도인데 좀 과장됐죠. 부모님 덕에 많은 걸 가졌고 평탄하게 살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중요한 건 금수저냐, 흙수저냐가 아닙니다. 그 수저를 가지고 혼자 퍼먹을 거냐, 아니면 나눌 거냐가 핵심이죠. 흙수저로 시작해 성공해도 자기만 먹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정치인 시절 줄곧 보수 진영에 몸 담은 남경필은 개혁 보수의 상징과도 같았던 소장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일원이었다. 19대 국회 때는 새누리당에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 2025.3.27 [한주형기자]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 2025.3.27 [한주형기자]

꽃길만 걷는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50대에 접어들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2014년 아내와 이혼했고, 장남은 마약에 손을 댔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경기도지사 재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잇단 시련 속에 2019년 정계 은퇴를 선택했다.

“최근 10년 사이 낙선, 이혼, 아들 마약까지 고통스러운 일들을 줄줄이 겪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합니다.” 그는 고난을 겪으면서 스스로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확인하고, 더욱 키울 수 있었다고 했다. 회복탄력성이란 예상치 못한 위기나 역경을 겪고도 원래 상태로 빠르게 돌아오는 능력을 말한다.

올해 1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가진 강연의 주제도 ‘한국 사회의 증가하는 마약 위기: 도전과 회복력’이었다. 그는 강연에서 실패의 경험과 가족을 향한 사랑에서 깨달은 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어떤 고난이 찾아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아요. 아들의 마약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신앙도 더욱 깊어졌습니다.”

장남은 2년 전 또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남 대표가 예루살렘과 요르단 성지순례를 위해 집을 비웠던 짧은 기간이었다. “요르단에서 아들의 마약 소식을 접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절망하던 순간 하나님의 소리가 들렸어요. 저의 아들 문제는 이제 당신한테 맡기라고 하시더군요. 대신 저는 마약으로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라고요.”

이후로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마약 퇴치 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설립한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NGU)는 ‘네버 기브 업(Never Give Up)’의 약자다. ‘은혜를 구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예방과 치료 지원 두 가지 활동이 핵심이다. 2년 전 마약 투약 사실을 폭로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도 남 대표를 만난 이후 마약을 끊었다.

2년6월형을 받고 복역 중인 남 대표의 장남은 올해 11월 출소할 예정이다. 아들이 수감된 이후 그는 하루 30분씩 아들과 영상으로 대화를 나눈다. 아들과 매우 가까워졌고 가족의 결속력은 더 단단해졌다. “사랑으로 가정이 화목해지니까 요즘은 집이 정말 천국 같아요. 매일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것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 2025.3.27 [한주형기자]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 2025.3.27 [한주형기자]

남 대표가 요즘 빠져 있는 일은 마약과 자살 예방 유튜브 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채널명은 ‘65년생 남경필’로 정했다. 이르면 5월 채널을 오픈할 예정이다. 밤 시간대 직접 라이브 방송도 생각하고 있다. 목표 구독자 수가 얼마냐고 묻자 “1000만명”이라는 통 큰 답이 돌아왔다. 인구 1300만명이 넘는 경기도지사를 지낸 정치인다운 대답이다.

일단 그가 현실적으로 세운 1차 구독자 목표는 100만명이다. 남 대표는 발 벗고 도와주는 지인들이 옆에 있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했다. 은구에는 남 대표를 비롯해 차인표·이성미·범키 등 연예인, 곽재선 KG그룹 회장·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 등 기업인,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박병대 전 대법관 등 법조인까지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남 대표는 사회활동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포니링크’ 대표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제가 ‘바퀴 집안(버스 운수 기업)’ 출신이라 원래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전국에서 자율주행 시범 사업에 가장 앞장섰다”고 밝혔다. 이어 자율주행이 고도화되면 장애인과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질이 개선되고, 교통사고로 사람들이 죽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은퇴를 뜻하는 리타이어(retire)가 타이어를 다시 갈아뀌고 다시 달린다는 뜻”이라며 “앞으로도 10년간은 사업가로서, 사회활동가로서 활발히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동안(童顔)이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환갑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어 보였다. 건강의 비결을 묻자 “나만의 모닝 루틴이 있다”며 소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 500㎖를 끓인 다음 찬물 250㎖를 섞어요. 따뜻한 물을 30분간 마시면서 성경을 읽거나 명상을 합니다. 그러고 나면 영혼이 풍요로워지고 몸에 땀이 잘 납니다. 곧바로 스트레칭과 근육 운동을 1시간 정도 합니다. 하루 단 5분이라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세요. 그러면 밑바닥에 있는 욕망과 공포가 보이고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정치에 미련은 없습니까?”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저는 어떤 일이든 대화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기도지사 시절 야당과 연정 실험을 했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이 되면 연정을 하고 싶다면서 두 번이나 저를 찾아왔었죠. 하지만 실제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는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야당을 적대시했고, 한국 정치의 분열 양상은 더욱 심해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향후 10~20년간 화합의 정치는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겠다는 판단에 정치를 그만뒀죠. 지금의 상황들을 보면서 제가 결정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재원 시니어팀장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 2025.3.27 [한주형기자]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 2025.3.27 [한주형기자]

<프로필>

△1965년 서울 출생 △경복고,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예일대 경영학 석사 △15·16·17·18·19대 국회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34대 경기도지사 △은구(NGU) 대표 △포니링크 대표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