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개관 ‘김창열 화가의 집’
서울 평창동 자택·작업실 일체
공공문화시설로 탈바꿈해 개방
종로구측 제안 유족이 받아들여
가족 생활공간 작품 전시장으로
작업실은 생전 모습 그대로 보존
장남 김시몽 고려대 불문과 교수
“대중과 공유할 수 있어 뜻깊다”
“그곳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구상하고 지은 아주 특별한 장소였기에, 그 공간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공간이 창작이라는 행위와 좀 더 깊이 있고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가장 먼저는 아버지의 작업과 만나는 공간이 되겠지만, 그 너머로 창작이라는 마법 같은 공간의 문을 여는 일이 됐으면 합니다.”
평생 깊고 영롱한 물방울을 그렸던 김창열 화백(1929~2021)의 장남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과 교수는 내년 초 개관하는 ‘김창열 화가의 집’이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중에게 특별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 화백이 작고 전까지 30여년간 가족들과 함께 생활했던 서울 평창동 자택과 작업실이 내년 초 종로구립 공공문화시설로 탈바꿈한다. 김 화백 타계 후 작가의 공간을 보존해 대중에 개방하자는 종로구 측 제안을 유족이 받아들이면서다. 지난 2022년 종로구는 김 교수와의 협약으로 이 집을 매입했고, 지난해 말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거실, 식당 등 가족의 생활공간은 김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작업실은 붓과 물감, 캔버스, 책장에 꽂힌 책, 책상 위 물건 하나까지 작가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돼 관객을 맞을 예정이다.
김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종로구의 제안에 매우 기뻤다. 아버지의 흔적을, 아버지께서 스스로의 바람대로 만든 그 작업실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사람들이 아버지께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빚어낸 그 마법 같은 공간에 들어가 창작의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에선 예술가의 작업실을 일반에 개방하는 일이 흔하다. 파리에 살던 집 근처에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업실도 있었다”며 “미술관의 작품이 실제로 탄생한 장소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화백의 평창동 집은 그가 설계 단계부터 깊게 관여해 직접 구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건축물은 환기미술관, 88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를 설계한 우규승 건축가가 1984년 설계했다. 638.3㎡ 대지에 지어진 지상 2층, 지하 2층의 콘크리트조 건물(건축 연면적 459.57㎡)이다. 지상 2층 출입구로 들어서면 회랑에서 북악산이 내다 보이고, 전통 한옥 구조처럼 중정(마당)을 품고 있는 ‘ㄷ’자 형태다. 생활공간이 있는 지상층을 지나 더 내려가야 다다를 수 있는 지하 1층과 지하 2층이 김 화백의 작업실 공간이다.
김 교수는 “아버지께서는 이북에서 피난을 오셨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서울에서 쫓겨나 제주도로, 이후엔 미국 뉴욕, 그리고 프랑스로 흘러가며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떠도는 삶을 사셨다”며 “그렇게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마을에 대한 향수를 안고 살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집의 목적은 바로 그런 귀속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아버지가 꿈꾸던 가족의 공간이 지어졌을 때 할아버지도 살아 계셨고 제 막내아들도 여기서 태어났다”며 “제 생각에는 아버지께서도 마침내 이 집에서 안식을 찾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독특한 구조를 띤 곳은 단연 김 화백의 작업실이다. 지하 1·2층이 계단을 통해 개방적으로 연결된 이 큰 작업실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정원을 마주보고 있어 창문을 냈다면 산이 보였을 테고 햇빛도 잘 드는 남향이었지만, 김 화백은 마치 땅 속에 숨겨진 동굴이나 벙커 같은 공간을 택했다. 김 교수는 “아버지는 세상과 단절된, 오직 자신과 작업만이 존재하는 특별한 우주 속에서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고자 하셨던 것”이라며 “대화를 좋아하셨고 가끔은 콧노래도 흥얼거리셨지만, 작업 중에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번 리모델링 설계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을 설계한 플랫폼아키텍처의 건축가 홍재승·최수연 소장이 맡았다. 이들은 사적인 공간이었던 집을 공공문화시설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건축적 변화를 줬다. 김 화백 가족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회랑을 북악산이 보이는 산책로로 만들어 한쪽에 장애인·노약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마당을 중심으로 안쪽에서 바깥으로 솟아 있던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어 내부 공간의 층고를 확보했고, 가족들이 생활하면서 거실 확장을 위해 없앴던 테라스도 관람동선을 위한 공간으로 복원했다.
김창열 화가의 집에서 관객은 지상 2층 출입구에서 회랑을 지나 카페·아트샵(누마루)과 매표소를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을 시작하고, 지하 작업실에서 외부 산책로를 통해 다시 지상 2층으로 돌아오게 된다. 지상 1층의 거실과 방에는 ‘회귀(回歸)’ 연작 등 김 화백의 주요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지하 1층에서는 김 화백이 실제 사용했던 작업공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작품 활동과 관련한 아카이브 자료를 전시한 아카이브실로 이어진다. 작업실의 메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 2층은 김 화백과 관련한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을 제외하곤 작가의 생전 모습 그대로 구성된다.
최 소장은 “현상 공모를 통해 설계를 맡았던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2016년 개관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6년에 개관하는 김창열 화가의 집까지 설계를 맡게 돼 건축가로서 매우 뜻 깊다”라며 “김창열미술관이 김 화백의 작품 세계를 망라한 마지막 정착지였다면 김창열 화가의 집은 작가가 평생 염원했던 회귀의 대상이자 모든 작품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건축적 공간을 통해 비로소 김 화백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가족 분들이 평창동 집에 있던 유품을 대부분 기증했다”며 “김창열 화가의 집에서는 작가의 작업 중간 과정까지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평창동 집에서 김 화백과 나눈 특별한 기억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가 작업실 외에 좋아하셨던 공간이 있는데, 하나는 작업실 옆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작업 도중 잠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거나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고, 때때로 그곳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시기도 했다”며 “다른 하나는 가족들이 모이는 식당이다. 하루가 끝나면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각자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작은 에피소드를 나누는 그 시간이 아버지께도 무척 소중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