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폐허 속에서 언어를 밀반출하기…그게 번역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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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폐허 속에서 언어를 밀반출하기…그게 번역가의 일"

입력 : 2026.06.05 16:59

모든 문장이 비명으로 물든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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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출신의 번역가인 알라 알카이시의 신간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은 인간의 글이 이룩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선 책이다. 고통스러울 만큼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 속엔 눈물이 차 있다. 폐허 위에서 건져 올린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선 번역, 나아가 번역가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라져 가는 세계'의 말을 번역하는 일은, 단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단순 작업이 아니다. 상실을 기록으로 보존해 '봉쇄' 너머의 세상에 가닿게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된다는 것은 사라져 가는 세계와 그 사라짐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세계 사이의 중개자가 되는 일이다."

왜 그런가. 대개 한 세계에서 만들어진 텍스트는 번역을 거쳐 다른 세계의 타자에게로 이동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가자지구는 봉쇄가 일상이고, 그 속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은 문자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 그들과 그들의 언어는 '말소'돼 가는 중이다. 그런 세계의 언어가 타자에게 가닿기 위해선 번역가의 '밀반출'이 필수적이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침묵의 심연을 가로질러야 한다. 그래서 사라져 가는 세계의 번역가는 단지 언어를 바꿔 끼우는 역할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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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베냐민의 '번역가의 과제'를 자주 인용하는데, 베냐민은 "진정한 번역은 텍스트에 사후의 삶을 부여한다"고 썼다. 여기서 저자는 질문한다. "원문이 잔해 속에 묻혀버린다면, 사후의 삶이 뭔 소용인가." 윤리적인 싸움도 필수적이다. 생을 뒤흔드는 서사의 언어와, 기각될지도 모를 고통의 언어 사이에서 살아남기를 희망해야 하므로.

그러므로 팔레스타인 번역가는 일종의 '망명' 상태란 결론에 저자는 이른다. 거칠게 옮겨 적으면 이렇다. "번역 불가능한 즉시성의 언어인 아랍어와, 거리를 두는 언어이자 외교의 언어, 단정하게 범주화된 언어인 영어 사이에 붙들린 존재가 번역가다."

가령 폭격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를 설명하려 할 때 영어는 'loss'를 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수동적이며, 고통을 가려버린다. 'loss'란 단어 너머에서 엄마는 무너져 있다. 단순한 번역은 무책임하다.

"번역은 의미의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이다. 모든 문장이 권력과의 대립으로 변하는 긴장에 찬 협상이다. 여과되지 않은 진실이 지닌 날것 같은 절박함과, 뒤로 물러서도록 길들여진 전 세계 담론이라는 넘기 힘든 문턱 사이의 공간에 번역가는 위치한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 문예 매체 '아디 매거진(Adi Magazine)'에 실린 글이 원문이다. 'Adi'는 타밀어로 '타격하다'란 뜻이라고 한다. 주변화된 세계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목적이 있는 매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도 파열된 자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우리에겐 그저 한 권의 책이지만, 이 책은 모든 문장이 비명과 절규에 붙들려 있다. 그럼에도 겨우 숨이 붙은 채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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