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예술이 아닌 낮은 자의 처소를 향했던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3000만부 넘게 팔린 대작이다. 이것도 적게 잡은 수치다. 자국 판매만 3600만부란 통계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다수는 저 소설의 첫 장조차 펼친 적이 없을 것이다. 너무 유명한 책은 아무도 안 읽는 책이 되곤 하지 않던가.
그런데 톨스토이의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톨스토이의 소설을 안 읽은 이들이라도 톨스토이의 예술사상을 확인하기에 적당한 책이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또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예술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우선 한 오페라 극장를 방문한 톨스토이의 떨떠름한 표정에서 시작된다.
극장을 찾은 톨스토이는 수많은 무명 예술인들이 '연출자의 욕받이' 신세로 전락한 모습을 본다. 그는 생각했다. '예술을 한답시고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 온당한가'란 짙은 혐오감이었다.
하여 톨스토이는 예술의 본질을 재정의하기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다수의 예술 사상가들이 "예술은 미(美)이고, 미는 거기서 얻는 쾌(快)"라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경우 '예술은 미(쾌)를 위한 활동이므로 그 과정은 전부 정당하다'는 논지가 만들어진다.
톨스토이는 이건 예술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인간의 노동과 도덕, 나아가 생명까지 희생시켜 얻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란 얘기였다.
"음식을 취하는 목적이 쾌에 있는가, 영양에 있는가. 예술 활동의 목적이 미, 즉 쾌라고 여기지 않게 될 때 사람들은 예술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에게 예술이란 타인으로부터 감염되는 감정의 체험이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기호를 이용하는 존재다. 인간은 언어로서 자신이 체험한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한다. 톨스토이는 감염 없는 예술,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예술은 예술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예술은 하나의 '직업'으로 굳어졌고 근현대 예술가들은 '타인으로의 감염'을 전제로 한 예술의 정신을 저버리기 시작했다. 상류층의 요구를 만족하는 예술을 '생산'해냈고, 예술가들은 예술의 진실성을 약화시켰다. 이게 톨스토이 주장의 핵심이다.
"히브리의 예언자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았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하는 아내처럼 꾸밈이 필요하지 않지만, 모조 예술은 매춘처럼 분단장을 필요로 한다."
'전쟁과 평화'로 되돌아가 보자.
이 소설은 전쟁에 관한 소설이지만 그 세계엔 영웅이 없다.
두려움에 떠는 병사, 궁핍으로 고통받는 농민, 나아가 이루지 못하는 사랑으로 절규하는 '개인'이 있을 뿐이다.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지론처럼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한다. 그 강력한 전염력이, 오늘날의 톨스토이를 만들어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