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신은 내게 '책과 밤'이라는 찬란한 아이러니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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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실명과 도서관장이라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았다.

그는 실명에도 불구하고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역경을 예술의 재료로 사용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보르헤스는 불행과 비참이 닥칠 때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며, 괴테의 문장을 인용하여 현재의 덧없음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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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한 도서관장이었던 작가 보르헤스의 내밀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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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농담'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20세기 세계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된다. 대표작 '픽션들'과 '알렙'에 수록된 그의 단편들은, 각 편이 10권짜리 대하소설보다 깊고 넓다.

그런 보르헤스의 개인적인 삶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 두 단어가 있으니 '실명(失明)'과 '도서관장'이다.

유전병 때문에 출생과 동시에 시력을 잃기 시작했던 보르헤스는, 나이 55세 무렵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데 보르헤스는 놀랍게도 그 시기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됐다. '실명한 도서관장'이라니. 이처럼 아이러니한 조합이 또 있을까.

2004년 출간된 보르헤스 산문집 '칠일 밤'은 문학의 거성이었던 그의 강연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칠일 밤-실명'이란 글은 아이러니했던 보르헤스의 삶을 사유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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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는 고백한다.

"장님은 깜깜한 세계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책에 따르면, 보르헤스는 일단 검은색과 빨간색은 볼 수 없었다. 흰색은 회색과 자주 혼동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르헤스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컴컴한 암흑도 아니었다. "희미한 빛이 비추는 세계"였다. 희미한 빛, 그것은 그가 더 이상 읽지 못한 언어의 세계를 은유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기능했다.

한 줌 희미한 빛에 기대며,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육체를 낙관한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난 다른 세상을 찾아낼 것이다." 실명한다는 것 역시 "삶의 한 방식"이라고 "하나의 스타일일 뿐"이라고 그는 쓴다.

보르헤스는 실명한 도서관장이었지만 실명한 도서관장이 그뿐만은 아니었다. 앞서 같은 도서관의 도서관장직을 지냈던 폴 그루삭(1848~1929)도 앞을 보지 못했다. 보르헤스 삶에 거했던 아이러니를, 그의 선배였던 그루삭 역시 경험했던 것. 보르헤스는 외롭지 않았다.

보르헤스는 역경이 다가와도 그것조차 "유용한 수단"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특히 예술가는, 작가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조건을 초극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예술가)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일어나는 모든 것, 심지어는 수치와 장애와 불행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점토로서, 즉 예술의 재료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처한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영원하거나 영원하려고 소망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는 괴테의 문장을 인용한다. "가까이 있는 모든 건 멀어진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영원하리라고 믿고, 일상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때'가 오기 마련이다. 불행과 비참이 현실에 왔을 때, 우리는 보르헤스처럼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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