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검은 꽃'을 옆구리에 끼고...멕시코에서 과테말라 밀림까지

2 hours ago 2

멕시코 시티에 도착했던 첫날이 떠오른다. 우연히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듣고 10대 때부터 꿈꿔왔던 중남미 배낭여행의 시작이었다. 서울을 출발해 도쿄와 로스엔젤러스를 거쳐서 24시간 만에 멕시코 땅을 밟았다. 저녁 7시 도착. 그닥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었지만 큰맘 먹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창문 밖으로 잿빛 하늘이 보였고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다. 한참을 달려서 이미 어두워진 거리의 한 건물 앞에서 내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프론트 데스크의 직원은 ‘여기는 네가 묵을 호스텔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호텔이다. 걸어서 15분 정도 가면 네가 예약한 호스텔이 있다’고 알려줬다. 비싼 돈 주고 택시를 탔는데 나는 결국 이 밤거리를 걸어야 했다. 두려운 마음이 피어올랐지만 방법이 없었다. 보통 때는 끌고 다니지만 비상시에는 멜 수 있는 큰 캐리어를 뒤로, 작은 가방 하나를 앞으로 메고, 길을 나섰다.

이동 수단도 멕시코에 온 목적도 달랐지만 120년 전에도 멕시코 땅에 발을 디딘 한국인들이 있었다. 무엇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을 떠난다면 어쨌든 지금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출신 성분은 다양했지만 가난하다는 공통점을 가진 1033명의 조선인은 그렇게 일포드 호에 올라서 제물포항을 떠났다. 멕시코의 살리나크루스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하고 열흘이 걸렸다. 거기서 또다시 기차와 배를 타고 에네켄 농장이 모여있는 유카탄반도의 중심도시 메리다로 향했다. ‘평생 지평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이 벌판의 황막함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고, ‘불덩이를 안은 것처럼 더웠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 덕분이었다. 6개월 동안 중남미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 전에 그 지역과 관련된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침 멕시코 이민자 이야기를 다뤘다는 그의 책이 눈에 들어왔고, 그 속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졌다. 나는 순식간에 1905년 멕시코 유카탄반도로 떨어졌다가 과테말라의 밀림으로 넘어갔다. 나의 멕시코와 과테말라 여행에서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에네켄 농장으로 간 '조선인'들이 불쑥 튀어나와서 나를 위로할 정도로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멕시코. / 사진 출처. unsplash

멕시코. / 사진 출처. unsplash

그들의 메리다, 나의 메리다

좋은 일자리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도착한 멕시코. 하지만 멕시코 이민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4년 동안 의무로 해야 했던 에네켄 농장에서의 고된 노동이었다. 장밋빛 미래를 보장했던 대륙식민회사의 간계로 채무노예로 팔려 갔던 것이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났던 이들은 무자비한 노동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무너져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4년 후의 귀향을 꿈꾸며 견딘다. 어떤 이들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자신의 몸값을 농장주에게 지불하고 나오고,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행히 시간은 흘러서 어느새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 하지만 귀국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여비가 없어서, 마야 여인과 결혼하여, 돌아가 봐야 먹고살 것이 없어, 사람들은 하나둘 유카탄에 주저앉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에겐 돌아갈 나라마저 없어져 버렸다.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유카탄의 메리다는 가혹한 운명 속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선택한 애증의 정착지다. 하지만 나에게 메리다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그 어느 나라의 문화와 언어도 배울 수 있고, 그 어느 나라에서도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된 장소였다.

나는 빨렌께에서 밤 버스를 타고 8시간 동안 달려 아침 6시에 메리다에 도착했다. 덕분에 아침 9시까지 입장할 수 없었던 호스텔의 로비에서 미유끼라는 일본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5개월 동안 과테말라 안티구아와 쿠바에서 살사(Salsa)를 배웠다고 했다. 그녀 덕분에 호스텔에 있던 다른 미국인 독일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모두 스페인어와 라틴 문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분에 빠르게 친해졌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사귄 외국인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함께 클럽에 가서 살사를 췄고,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줬다. 여행지에서 만난 짧은 인연이었지만 이 경험은 나에게 오래도록 남아서, 외국어를 배우거나 새로운 나라를 가야 할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메리다. / 사진 출처. unsplash

메리다. / 사진 출처. unsplash

삶이 던진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

많은 멕시코 이민자가 이곳에 남았지만 여기의 상황도 좋지는 않았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언어도 되지 않는 이민자들이 남의 나라에서 먹고 사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멕시코 혁명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많은 지역이 무법천지가 되었고, 이민자들은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러다 어느 날,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는 과테말라의 독재 정권과 싸우고 있는 혁명군에게서 병력을 보내주면 혁명에 성공할시 3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용병으로 과테말라의 밀림 띠깔로 넘어가 싸우던 대다수 사람은 그곳에서 죽었다. 이 책은 살아남은 자들이 멕시코와 쿠바, 그리고 미국에서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가는지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꼭 책의 영향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한인 용병들처럼 멕시코를 떠나서 바로 과테말라의 밀림 띠깔로 향했다. 멕시코 빨렌께에서 과테말라 플로레스로 가는 육로를 이용했는데, 배까지 타야 했던 이 여정은 24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띠깔. 중미에는 멕시코의 치첸이샤를 비롯해 욱스말, 온두라스의 코판 등 마야 유적지가 지천에 널려있지만 과테말라의 띠깔은 다른 곳과는 좀 다르다. 그 어느 곳도 띠깔만큼 깊은 정글 속에 숨어있는 유적지는 없기 때문이다.

콰테말라의 밀림 띠깔. / 사진 출처. unsplash

콰테말라의 밀림 띠깔. / 사진 출처. unsplash

아직은 만물이 눈 뜨기 전, 새벽. 나는 띠깔 유적지의 한 가운데 서서 정글 속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이곳에서 전투를 하고 나라를 세우고 죽어갔던, 소설 <검은 꽃> 속 인물들을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좋을 것이라고 믿고 시작한 멕시코로의 이주가 사실은 비참한 생활의 시작이었고, 그들에게는 그것을 막을 힘도 도망갈 방법도 없었다. 꾸역꾸역 자신들에게 부과된 4년의 강제노역을 마쳤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 방도를 마련했다. 사람답게 살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죽음으로 귀결된 삶도 있었다.

아마 우리의 삶 대부분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며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단지 사건(happening)일 뿐, 진짜 삶은 각자가 그 사건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서 전개될 것이다. 어쩌면 120년 전 이 땅을 떠나서 미지의 세계 멕시코에 발을 디디고 살아내었던 멕시코 이민자들처럼, 매일 자신의 몫을 해내며 그냥 견디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신보경 칼럼니스트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