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지금의 한덕수 권한대행처럼 여당 주자들을 능가했다. 당연히 권한대행의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황교안은 다행히도 불출마를 밝혔지만 한덕수는 무슨 연유인지 안개 전술이다. 국힘 의원 절반이 ‘한덕수 단일화 작전’에 골몰한다는 것도 곱게 보이진 않는다. 과연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구국의 일념에선지, 권세만 누릴 수 있다면 업둥이도 상관 없다는 웰빙당 전통인지.
● 윤석열 파면에 여당은 책임 없나이젠 집권여당의 위세를 잃었지만 3년 전 국힘은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을 업어와 대통령을 만든 정당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파면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이번엔 그런 시늉도 없다. 웰빙당 DNA가 바뀔 리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면 섬뜩하다(그래서 수구꼴통이란 소리를 듣는 거다). 사인(私人)에게 국정 개입을 허용해 파면당한 박근혜는 사저로 돌아가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선 제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었다. 어부인에게 더 많은 국정 개입을 허용했을 윤석열은 다른 이유로 파면 당했지만 아크로비스타로 돌아가선 “다 이기고 돌아왔다”는 카이사르 뺨치는 흰소리를 날렸다.
그나마 정의화 상임고문단 회장이 9일 그래도 이 당에 어른이 있음을 알려줬다. “현시점에서 국민들이 여당인 저희에게 바라는 바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이라며 “대선 출마는 개인의 자유지만 열명이 넘는 분들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서고, 대통령 권한대행 영입까지도 마다 않겠다는 모습을 우리 국민들이 곱게 볼 것인지 우려하는 심정”이라고 말한 것이다.
● 왜 하필 폭력적 프로 ‘주먹이 운다’ 식이냐
국회의장을 지낸 그는 “우리 당의 행보나 소속 의원들 또 당 지도부, 대선에 나서겠다는 한 분 한 분들의 말과 행동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질지에 항상 생각하며 진중하게 행동해야 할 것”도 당부했다. 문제는 과연 귀담아 듣느냐다. 당장 대선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은 황우여가 해괴한 발언을 했다. 경선을 예능 프로그램처럼 치른다는 것이다!14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의 진행자 박재홍도 황당한지 “위원장님도 그 결정에 동의하신 거죠?” 묻자 황우여는 말했다. “우리 당이 가장 출렁댈 수 있는 세대가 20, 30대예요. 거기 호소력이 있어야죠. 그걸 짠 분들이 대개 30대 분들이에요.”
심지어 17일 미디어데이에서 원내대표 권성동은 “정치에 웃음과 재미를 선사해야 한다”고 했다. 하! 당신들이 언제 정치에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다고 뒤늦게 경선에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겠단 말인가? 지금은 피눈물로 사죄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다. 그런데 마술쇼를 보이는가 하면 일대일 토론, 맞장토론에선 예능 프로 ‘주먹이 운다’ 방식을 도입한다는 거다.
● 대통령 견제 못한 책임, 반성한 적 있나
듣는 이의 심정을 아는지 박재홍이 황우여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일각에서는 일반적인 대선 경선 상황이면 뭔가 축제 같은 분위기나 다양한 방법이 논의될 수도 있지만 지금 대선은, 보수당에서 뽑았던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이잖아요. 최근 10년 사이에 두 번째 탄핵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능적 측면을 가미하기보다는 좀 더 진중하게 혹은 반성을 담아서 혹은 좀 진지하게 하셨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게…”
당수가 팔 단이래도 동의 못한다. 국힘이 언제 당 책임론을 밝힌 적 있었던가. 탄핵 인용 뒤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국민께 사과한다.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책임을 통감한다. 민주당의 의회폭거를 막아내지 못한 점도 반성한다”고는 했다. 그러나 행정부 수반의 폭주를 견제 못한 책임에 대해선 입도 뻥끗한 적 없다.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서만 국가 원수(元首)일뿐, 국민에 대해선 종복(從僕)이고 입법부의 견제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 대통령은 여당의 상전이 아니다
정당법에선 ‘정당’을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대통령은 정당이 추천한 공직선거의 후보자여서 당선된 것이지, 추천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었다. 상전이 아니란 말이다.
국힘 당헌 7조는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를 명시해 대통령이 당무에 관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는 신문 칼럼을 쓴 적도 있다. 젊은 당 대표 몰아내려 애쓰지 말고 당헌을 바꿔 총재를 하시라고). 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한다’고 돼 있다. 당이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참모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김순덕 칼럼]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831/115246267/1
탄핵 당한 대통령을 둘씩이나 낸 국힘이 제대로 경선을 치르려면, 예능 아닌 진지한 시사여야 마땅하다. 20~30대를 겨냥해 ‘주먹이 운다’를 도입했다는 건 청년을 우습게 보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려면 부디 당명부터 바꾸시기 바란다. ‘국민’ 빼고 ‘수구의힘’이나 ‘웰빙의힘’ 아니면 ‘웃음의힘’ 또는 ‘주먹의힘’으로.
● 차라리 밤샘토론 유튜브 생중계하라
그따위로 흥행에 성공할 꿈 꾸지 말고 치열하게, 진지하게, 제발 절박하게 당신들 정당과 나라와 국민과 미래를 고민하는 자세로 밤샘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구국의 의지와 피를 토할 듯한 언어를 유튜브로 생중계하기 바란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밤을 새고 볼 것이다. 웃음과 재미는 없어도 좋다. 나라를 구할 의지가 없으면, 있는 척이라고 하란 말이다.
미디어데이에서 당신들이 시간에 쫓겨 시답지 않은 소리에 그칠 때, 나는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출마자들은 분하지도 않은가. 정권을 잃을 판에 할 말도 다 못하고 분초나 따지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친윤 세력은 쾌재를 불렀을지 모른다. 당신들 중 대통령이 나오길 원치 않아서다. 어쩌면 가장 ‘만만한 1등’이 나와 한덕수를 단일화시켜주는 것이 그들의 시나리오 아닐까?
● ‘당권 욕심’ 역겹다…국민 앞에 사죄부터
열나게 썼건만…국힘 의원 다수는, 어쩌면 주자들도 대선 승리엔 관심 없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대선에 질 것은 뻔하고, 사실은 그 뒤의 당권을 노리고 나섰다는 얘기다. 뻑 하면 격노하던 대통령도 사라졌고 솔직히 의원 노릇은 야당이 더 편할 터다. 이재명이 대통령 된대도 독재할 공산이 크고, 그럼 민심도 잃을 게 뻔해 2028년 총선에선 국힘이 이길 수 있다는 게 웰빙당 국힘의 간특한 계산이라는 거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당신들을 지지했던 보수층에 못할 짓 해놓고, 대체 뭘 잘했다고 히히대며 경선하는 건가. 윤석열과 거리 두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때 대통령한테 부인 단속 좀 하라고 말 한마디 못한 잘못부터 사죄한 뒤(한동훈 빼고), 국힘에도 ‘대통령 감’이 있음을 이번 경선에서 진지하게 보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국고보조금 받는 정당으로서의 예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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