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형의 재계 인사이드] '군산의 눈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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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형의 재계 인사이드] '군산의 눈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군산 꼴이 될까봐 잠도 잘 못 잡니다.”

얼마 전 만난 한국GM 부평공장 직원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3일 발효되는 미국의 수입차 관세 탓에 청춘을 바친 일터가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지난해 생산량(49만 대)의 84.8%를 미국행 선박에 싣는 한국GM 사업 구조를 감안하면 괜한 엄살이 아니다. 차값이 3만달러(약 4400만원)를 넘지 않는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주력인 한국GM에 25% 관세는 말 그대로 ‘치명타’다.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관세가 없는 미국으로 생산 물량을 돌리면 한국GM은 그 길로 문을 닫게 된다.

7년 전 군산공장 철수 데자뷰

GM이 한국 철수를 결정하면 당장 부평·창원공장 직원 1만1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1차 협력사 276곳을 포함해 2, 3차 협력사 등 3000여 곳도 부도 위기에 내몰린다. 한국GM이 창출한 직간접적 일자리는 15만 개가 넘는다.

[김보형의 재계 인사이드] '군산의 눈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7년 전의 데자뷔다. 한국GM은 2018년 2월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쉐보레 브랜드로 수출해온 유럽에서 GM이 2013년 철수한 여파였다. 수출길이 끊긴 한국GM이 적자 늪에 빠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2014년부터 4년 동안 낸 순손실만 2조5631억원이었다. 한국GM은 2018년 “정부 지원이 없으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요청했고, 정부는 산업은행을 앞세워 한국GM에 8100억원을 출자했다. 일자리 15만 개와 나랏돈 8100억원을 맞바꾼 셈이다.

그렇게 한국GM은 기사회생했지만 ‘트럼프 관세 폭탄’이란 복병에 다시 한번 코너에 몰리게 됐다. 마침 GM이 2018년 공적 자금을 받으면서 약속한 한국GM 최대주주 유지 기간(10년)도 2028년 끝난다. 3년만 버티면 한국GM을 부담 없이 솎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GM 본사는 향후 한국GM에 생산을 맡길 차기 모델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쯤이면 연구개발(R&D)과 생산라인 교체 등 신차 준비에 들어가야 하지만 그런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韓 떠날 이유 더 많아져

좋든 싫든 한국GM은 GM 본사의 글로벌 생산 전략에 따라 죽고 살 수밖에 없다. 작년 2만4824대에 그친 한국 시장만으로 15만 개 일자리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으로 GM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봤자 그때뿐이다. 한국GM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GM의 다른 공장보다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GM이 지금 그런 경쟁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7년 전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린 카허 카젬 전 한국GM 사장은 재임 기간(2017~2022년) 내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파행적 노사 관계가 수출 안정성의 발목을 잡는다”고. 그러면서 “한 번 임단협을 맺으면 스페인은 3년, 미국은 4년간 유지되지만 한국은 매년 노사 협상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고 토로했다.

카젬 전 사장은 파견근로자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도록 막는 파견법에도 불만이 많았다. 미국과 영국은 파견 대상 업무에 제한이 없고, 독일과 일본도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는 사내 하도급을 허용하지만 한국만 유독 까다롭게 규제해서다. 카젬 전 사장은 결국 일부 제조 공정을 도급 업체에 맡겼다는 이유로 기소돼 2023년 1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궁지에 몰린 회사의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내린 결정은 그에게 ‘범죄자’란 오명만 안겼다.

미국상공회의소가 이런 식의 과도한 ‘기업 옥죄기’를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했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1년짜리 노사 협상과 파견근로 제한은 카젬 전 사장이 처음 부임했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사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기고, 업종과 직무를 가리지 않는 획일적인 주 52시간제가 시행됐다. 따지고 보면 GM이 한국을 떠나야 할 이유는 7년 전보다 많아졌다. 그냥 두면 ‘군산의 눈물’은 부평과 창원에서 재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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