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과 본질: "은혜에서 권리로"[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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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퇴직금은 회사가 주는 마지막 보너스 아닌가요?” 아직도 많은 사장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20년, 30년 회사를 위해 일해준 대가로 사장님이 주는 두툼한 위로금, 혹은 제2의 인생을 위한 ‘보너스’. 그래서 우리는 이 돈을 받으면 차를 바꾸거나 빚을 갚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공돈이나 다름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돈의 성격이 정립되기까지, 서구 사회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친 치열한 ‘개념 전쟁’이 있었습니다. 과연 퇴직금은 주인의 ‘선의’일까요,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퇴직연금 개혁의 첫 단추입니다. 19세기 런던, 늙은 집사의 눈물 — “이것은 은혜(Gratuity)다” 시간을 거슬러 산업혁명기 영국으로 가보겠습니다. 귀족의 대저택에서 평생을 바쳐 일한 집사가 은퇴하는 날, 주인은 떠나는 그를 불러 금화가 든 주머니를 줍니다. “자네, 그동안 내 수발드느라 고생 많았네. 이건 내 작은 성의일세.” 집사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당시 이런 돈을 ‘Gratuity(은혜적 하사금)’라고 불렀습니다. 어원인 ‘Gratitude(감사)’에서 알 수 있듯, 철저히 주인의 호의에 기반한 선물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만약 주인이 기분이 나쁘거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면? 집사는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평생을 바친 노동의 대가가 전적으로 주인의 변덕스러운 자비심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셈입니다. 20세기 미국, “아니다, 이것은 권리(Right)다” 이 불합리한 ‘하사금’ 문화를 뒤집은 결정적인 사건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철강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의 소송전이었습니다. 노조는 “퇴직연금도 임금 협상의 대상”이라 주장했고, 회사는 “연금은 우리가 베푸는 복지 혜택일 뿐, 노조가 관여할 바 아니다”라고 맞섰습니다. 미국 법원은 이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1948년 인랜드 스틸(Inland Steel) 사건에서 연방항소법원은 연금과 퇴직급여가 사용자가 마음대로 베푸는 복지 혜택에 그치지 않고, 임금·근로조건과 긴밀히 연결된 문제이므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퇴직연금은 주인의 선물이 아니라 근로자가 일하며 쌓아둔 보상의 일부, 즉 나중에 받는 임금이라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법적 전환은 혁명이었습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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