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05월01일 08시20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서 기자] “금융위원회는 (STO) 법을 빨리 만들어 달라고 단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정무위원회도 시급한 법안이라는 인식을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여러 토론회를 다니다 보니 실제로 현실에서 사업하는 분들은 너무 급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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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연서 기자) |
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 진행된 STO 간담회(블록체인 강국 코리아를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STO 법제화에 속도가 나지 못하는 이유는 당국과 국회가 법제화에 뒷짐을 지고 서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민 의원은 국회가 STO 법을 급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 의원은 “급한 법은 일주일 만에 만든다. 오늘 정무위원회 통과, 내일 법사위 통과, 오후 본회의 통과시킨다”며 “우리 입장에선 시간이 없어 뒤에 것을 처리 안 하는 것이다. 진짜 (법안 통과가) 급하면 앞으로 당겨서 처리할 수 있다”며 법안 통과가 미뤄지는 이유는 ‘무관심’ 때문이라고 짚었다.
STO 법안 발의는 됐지만 심층 논의는 아직
이날까지 발의된 토큰증권 시장 관련 법안은 총 다섯 건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토큰증권 제도화 법안인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신탁수익증권의 발행을 허용하는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한 바 있다.
김재섭 의원안이나 민병덕 의원안, 강준현 의원안 등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들을 살펴보면 법률 체계와 발행 주체, 규제 방식 등 핵심 요소에서 일정 부분 차이를 보인다. 법안 간 충돌을 최소화하고 제도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무위원회 차원의 통합 논의가 필수적이다. 업계의 실무적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후, 상임위에서 법안들을 병합·조율해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조각투자 제도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해당안은 오는 6월 16일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을 발행하는 조각투자 플랫폼에 대해 수익증권 투자중개업이라는 새로운 인가 단위를 신설하고, 자산유동화법을 통해 발행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국은 이를 통해 현재 샌드박스로 운영 중인 조각투자 사업을 정식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화 추진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당국은 관련 법안의 병합 심사나 업계 의견 수렴 등 실질적인 논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제도 정착을 위한 후속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종된 업계 논의 주체… 제도화 ‘공회전’ 우려도
민 의원은 앞선 간담회에서 STO 법제화가 빠르게 되기 위해선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아쉬움 중 하나는 단체가 있는 곳들은 (국회를) 막 찾아다니기도 하는데 여러분들은 만들어서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기술을 잘 알고 있지만 조문화 권한이 없고, 기술을 모르는 국회의원은 권한이 있는데 잘 모르니 아무도 안 하는 상태가 된 것”이라며 “기술을 가진 분들이 설명해주시고, 기술을 이해한 법률가들이 조문화를 돕고, 그것을 가지고 설득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 STO 관련 법제화를 논의할 수 있는 업계 조직은 사실상 대부분 해체되거나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과거에는 증권사와 핀테크 기업들이 연합해 다양한 실무 협의체를 구성하고, 제도화 방향을 모색해왔으나 지금은 그 흐름이 거의 끊긴 상황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증권사, 은행들이 함께 참여한 STO 이니셔티브 조직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관련 스타트업들도 자금난 등으로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일부 기업만이 소수의 투자금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 내 자율적인 법안 초안 마련이나 국회와의 소통 채널 구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로선 ‘핀테크산업협회 토큰증권협의회’ 등 일부 민간 중심의 협의체를 제외하곤 의미 있는 법률 논의나 입법 대응이 가능한 업계 단위 조직은 거의 전무하다.
이처럼 입법 추진의 동력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민간 논의체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STO 법제화는 구조적으로 속도를 내기 어려운 형국이다. 금융당국은 유권해석 수준의 가이드라인 제시에 머무르고 있고, 국회는 정무위 중심의 법안 병합 심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업계 역시 제도 설계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역량과 조직 기반이 부족하다.
결국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정체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규제 공백 속에서 민간의 실험만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률적 근거 없이 토큰증권 발행이나 유통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투자자 보호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STO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선 단순히 기술 도입이나 투자 유인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범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STO 업계 관계자는 “정무위원회 차원의 법안 병합과 입법 로드맵 마련, 금융당국의 명확한 정책 방향 제시, 그리고 업계의 실무 대응 역량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STO 법제화는 실제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