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된 메모리에 애플마저 백기 투항··· 6월 25일 가격 인상 그 배경엔

14 hours ago 6
지난 6월 25일, 애플이 전 세계 온라인 스토어를 일시 폐쇄한 후 맥, 아이패드를 비롯한 주요 하드웨어 라인업의 가격을 기습 인상했다. 그간 애플은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세대를 교체할 때 관례적으로 가격을 변동했고, 특정 국가의 환율 변동폭이 지나치게 클 때에만 제한적으로 인상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애플이 전 세계 스토어 가격을 동시에 인상한 것은 애플 역사상 처음이어서 전 세계적으로 논란을 빚었다.

애플 맥미니 제품 사진,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단가가 오르는 와중에도 가격을 거의 상승시키지 않았고, 시스템과 그래픽 메모리가 통합된 구조여서 인기가 높았다. 맥미니는 이번에 약 30만 원 이상됐다 / 출처=애플코리아

애플 맥미니 제품 사진,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 단가가 오르는 와중에도 가격을 거의 상승시키지 않았고, 시스템과 그래픽 메모리가 통합된 구조여서 인기가 높았다. 맥미니는 이번에 약 30만 원 이상됐다 / 출처=애플코리아

제품 가격은 가장 저렴한 맥북 네오가 99만 원에서 119만 원으로 인상되고, 애플 TV는 21만 9000원에서 64% 오른 35만 9000원대로 조정됐다. 가격 상승폭은 기본 단가보다는 메모리 용량에 다른 상승폭이 훨씬 크게 작용했으며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은 인상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올해 가을 출시될 애플 아이폰 18 및 애플워치 신제품부터는 가격이 20%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2011년 부임했으며 애플의 최전성기를 이끈 경영자로 손꼽힌다. 그는 9월 1일까지 근무하고 존 터너스 디자인 부문 총괄에게 직을 넘겨준다 / 출처=애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2011년 부임했으며 애플의 최전성기를 이끈 경영자로 손꼽힌다. 그는 9월 1일까지 근무하고 존 터너스 디자인 부문 총괄에게 직을 넘겨준다 / 출처=애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과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는 막대한 가격 인상분을 완화하고 고객들이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라며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애플이 예고 없이 가격을 인상한 데다가 소비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격이 상승하면서 애플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6.36% 하락했다. 그간 애플의 가격 억제력은 업계는 물론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전방위적인 기습 인상으로 인해 고객 신뢰도에도 타격을 입었다.애플의 갑작스런 가격 상승, 배경엔 메모리, 메모리, 메모리

시장조사기업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메모리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4배 성장한 1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세는 메모리 출하량의 48%가 데이터센터에 집중됨에 따른 공급 부족과 가격 급등으로 메모리 단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많은 AI 기업이 인프라 확보를 위해 계속해서 단가를 높이는 것이 이유다. 이미 범용 D램 메모리 가격이 HBM보다 높은 현상도 발생하며 소비자용 메모리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애플을 제외한 거의 모든 IT 제조사는 올해 초부터 제품 단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일반 소비자용 DDR5 32GB는 지난해 7월만 해도 12만 원대였지만 현재 60만 원에 형성돼있다. 5만 원대 초반이었던 DDR5 16GB도 현재 30만 원대다. 3대 메모리 제조사 중 한 곳인 마이크론은 올해 초 일반 사용자용 메모리 브랜드를 폐기하고 서버용 수요에 집중하고 있을 정도다.

삼성전자의 주력 노트북 라인업인 갤럭시북 6 프로는 올해 80만 원 가량 올랐다 /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주력 노트북 라인업인 갤럭시북 6 프로는 올해 80만 원 가량 올랐다 /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작년까지 300만 원대 중후반으로 내놨던 갤럭시북 울트라 라인업을 올해는 100만 원 비싼 462만 원에서 493만 원에 출시했고, 갤럭시북 프로 라인업도 최저 176만 원에서 260만 원으로 높였다. LG 그램 역시 지난해 230만 원대인 제품 가격이 올해는 354만 원대로 격상됐다. 올해 초 출시된 갤럭시 S26 시리즈도 3년 만에 출고가를 최소 9만 원에서 최대 41만 원대씩 끌어올렸다.

현재 최고 성능 라인업인 맥 스튜디오는 25일 하루 만에 가격이 100만 원 올랐다 / 출처=IT동아

현재 최고 성능 라인업인 맥 스튜디오는 25일 하루 만에 가격이 100만 원 올랐다 / 출처=IT동아

애플 매킨토시 중 가장 저렴한 맥북 네오 256GB는 99만 원에서 119만 원대로 20만 원 인상됐고, 맥북 프로 14인치는 269만 원에서 60만 원 오른 329만 원대로 조정됐다. 데스크톱인 맥 스튜디오는 329만 원대에서 429만 원으로 100만 원가량 뛰었으며, 비전 프로 역시 499만 원대에서 579만 원대로 뛰었다. 아이패드 기본 태블릿도 52만 원대에서 74만 원대로 22만 원이 올랐다. 저렴한 제품일수록 상승폭이 적고 메모리 용량이 큰 제품일수록 가격대를 크게 올렸다.애플 입장에서는 과거 관례처럼 신제품 출시 시기에 맞춰 가격을 조정하려 했겠지만, 최근 메모리 단가 상승 폭이 지나치게 크다 보니 이례적으로 가격을 중도 변경한 것이다. 시기와 방법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가격을 높인 것 자체는 다른 제조사들과 비슷한 행보다.

파멸적인 메모리 가격 상승, 2023년 수익 붕괴에 따른 반발작용
메모리 가격의 폭발적 상승은 수요와 공급 곡선의 균형의 붕괴 때문이다. 반도체는 한번 라인이 가동되면 공장을 더 늘리지 않는 한 공급을 더 늘릴 수 없다. 그래서 반도체 제조사들은 향후 몇 년 치 계약분을 미리 받아두고 수요를 예측해서 생산량을 결정한다. 2023년 당시 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과도한 재고로 인한 역대급 위기를 맞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 PC 및 서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메모리 수요가 급감했고, 이로 인해 메모리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2023년 1분기에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의 매출 대비 재고 자산이 250%에 달할 정도였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LPDDR 메모리(위쪽) 저장공간으로 활용되는 USF 플래시 메모리(아래쪽) / 출처=IT동아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LPDDR 메모리(위쪽) 저장공간으로 활용되는 USF 플래시 메모리(아래쪽) / 출처=IT동아

이때는 메모리를 헐값에 팔아도 판매가 되지 않을 지경이어서 반도체 업계들이 적극적 감산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빅테크 기업들은 첨단 기술에 맞는 고성능 메모리를 계속 요구함으로써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유발했다. 이때 애플은 맥북과 아이패드 매출이 각각 31%와 13%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사상 최고의 마진을 기록했다.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자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큰 손인 애플의 수익률만 좋아진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모두 -47%에서 -67% 수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애플은 저장용 메모리인 낸드플래시의 용량 차이를 통해 160억 달러(약 24조 8000억 원) 이상의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는 “최근 메모리 수급 불균형은 공급 업체만의 책임이 아니며 일부 고객들이 업계 가격을 지나치게 끌어내린 게 원인”이라며 간접적으로 애플을 겨냥한 발언을 했을 정도다.

데이터센터는 AI를 구동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다. 현재 메모리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 이 데이터센터의 수요 급증이다 / 출처=SK하이닉스

데이터센터는 AI를 구동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다. 현재 메모리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 이 데이터센터의 수요 급증이다 / 출처=SK하이닉스

한편 2023년 말 챗GPT가 등장하며 AI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고, 2025년 7월을 기점으로 재고로 쌓인 메모리 반도체가 거의 소진되면서 D램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6년 수요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며 생산량 자체가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메모리 가격이 6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메모리 3사가 작년부터 공급 확대를 위해 메모리 공장 등을 건설하기 시작했으므로 적어도 3년에서 5년 이상 메모리 가격이 계속 오를 전망이다. 중간에 한번 더 AI로 인해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다면 가격 상승폭은 더 커질 수 있다.

가격 상승은 모든 제조사에 해당··· 당분간 ‘오늘’이 제일 저렴할 것

IT 업계에서는 2023년 당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메모리 가격을 저렴하게 구매한 탓에 오늘날 메모리 가격이 폭등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당시 메모리 기업들은 재고 자산 증가로 인해 투자 여력이 없었고 3~5년 뒤인 지금을 위해 메모리 공장을 증설할 수 없게 된 것이 지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가격 상승의 원인은 빅테크 기업보다는 생성형 AI로 인해 메모리 수요가 크게 증가한 점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여전히 재고를 소진하느라 가격이 상승하진 않았고 재고가 끝나고 나서야 수요 확대를 언급하며 메모리 공급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평택 4 공장 및 5 공장을 완공하고 각각 27년 및 2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올해 4월부터 청주 M15X 공장의 D램 양산 물량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지난해 착공을 시작해 내년 중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마이크론은 2027년 중반에 아이다호 팹 가동을 시작하고, 히로시마와 뉴욕 메가팹은 2028년에서 2030년 말에나 가동된다. 따라서 지금의 메모리 공급 부족이 해소되려면 2028년은 지나야 하는데 2028년에도 지금처럼 AI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할 경우 소비자용 제품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공급과잉 후 가격 폭락, 감산, 가격 폭등의 사이클을 반복했고, 가격 폭등 시기를 ‘슈퍼사이클’로 불렀다. 하지만 앞으로 메모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일만 남았으므로 이제 더 이상의 슈퍼사이클은 없이 파멸적인 가격 상승만 남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향후 1년 내 메모리 가격이 2배 더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고, 레노버는 메모리가 저렴한 시대가 끝나고 적어도 5년 이상은 폭등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애플의 기습적인 가격 인상은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위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규모의 경제는 더는 가격을 낮출 요인이 되지 못하며 제조사들은 메모리 부족을 이유로 제품을 단종하거나 분기마다 가격을 크게 끌어올릴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가격 역시 앞으로 몇년 간 떨어질 일은 없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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