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근로자대표제' 재추진
임기·권한 등 법으로 규정해
근로제도 '서면 합의권' 부여
상설기구 파견·하청 참여 보장
과반노조 없는 대기업도 영향
정부 "논란살펴 개정안 마련"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자대표제 개편이 현실화하면 과반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사 지형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사용자가 사실상 임의로 정하거나 특정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일회성으로 선출해온 근로자대표가 일정한 임기와 권한을 보장받는 '상시 대표' 체계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수 노조 체제지만 과반 노조가 부재한 대기업의 경우 기존 노조와 근로자대표, 노사협의회 간 역할 재정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과반 노조는 사업장 전체를 대변하는 근로자대표 지위를 당연 승계한다. 문제는 특정 노조가 과반 지위를 상실할 경우다. 이 경우 해당 노조는 조합원을 위한 단체교섭권은 유지할 수 있으나, 사업장 전체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상 서면합의의 대표성을 계속 행사하기 어렵다.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보상휴가제처럼 전 직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별도의 과반 대표성이 필요해서다.
◆ 근기법·근참법 투트랙 개정
정부 검토대로 근로자대표의 임기를 보장하고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체계와 연계될 경우 과반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나 별도의 상설 대표기구가 사업장 전체에 적용되는 근로조건 결정 과정에서 현재보다 큰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과 근로자참여법을 '투 트랙'으로 손질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근로기준법 개정은 과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상대로 전체 근로자를 대표할 주체를 어떻게 선출하고 보호할지를 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 선출에서 절차, 임기, 지위, 의무를 명확히 하고, 과반 노조는 없지만 노사협의회가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이 근로자대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연계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반면 근로자참여법 개정은 상시적인 의견 수렴 통로를 확대하는 작업이다. 기존 노사협의회를 확대하거나 별도의 상설 노동자 소통 기구를 두고 기간제·여성·파견·사내하청 등 다양한 노동 주체의 참여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만 파견·하청 노동자는 원청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대표에 바로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노사협의회에 추가 참여시키거나 별도의 소통 창구를 두는 방식이 검토 대상이다. 근로자대표제는 2020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한 차례 사회적 합의까지 이뤘지만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노사정은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 사용자 개입 금지, 활동 보장과 함께 원칙적으로 3년의 임기를 부여하는 데 합의했다. 노사협의회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근로자위원들이 대표 기능을 맡는 방안도 논의됐다.
◆ 노동자대표위는 교섭권 없어
그러나 합의 이후 근로자대표와 노동조합·노사협의회 간 역할 관계, 대표권 행사 방식과 사용자 부담 등을 둘러싼 쟁점이 이어지면서 관련 법 개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당시 노사 양측이 제기한 우려와 입법이 무산된 원인을 다시 검토해 논란을 줄인 개정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무노조 사업장에도 임기와 활동 보장을 갖춘 상시적인 근로자대표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 다만 근로자대표는 단체교섭권과 쟁의권을 가진 노동조합과는 법적 성격과 권한이 다르다. 또 소수 노조가 난립한 대기업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처럼 복수 노조의 조합원 수 변동에 따라 과반 노조 여부가 달라지는 사업장에서는 제도 변화의 파장이 더 클 수 있다. 과반 노조가 없어지면 어느 한 노조가 근로기준법상 전체 근로자의 대표 지위를 갖기 어려워지는 만큼, 향후 입법 내용에 따라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회의나 상설 근로자 대표 기구가 근로시간·휴가 등 사업장 전체에 적용되는 근로조건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노동계와 경영계는 팽팽히 맞설 전망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사용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치기 쉬운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의 기능을 사실상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근로자대표에게 장기간의 임기와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면 노조와 대표 기구가 중첩되고 사업장 의사결정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김기승 전 노동경제학회장(부산대 경제학과 교수)은 "한국 노동법의 문제가 근로자 대표성이 모호해 과반 노조가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면서 "인천국제공항 사태처럼 원청과 하청 근로자 간 갈등 양상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대표제 개편은 하반기 노동입법 패키지의 한 축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노사 이해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법안을 대거 입법 추진한다. 정부·여당이 다수 법안을 동시에 밀어붙일 경우 경영계가 기업 부담 증가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면서 하반기 국회가 노동법 충돌의 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예빈 기자 /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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