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닭 키우세요" 난리난 미국…한국은 어떨까? [이광식의 한입물가]

12 hours ago 5

한경DB

한경DB

“집 근처 코스트코에 가면 아침부터 달걀을 사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서 있어요. 미국에선 어떤 물건의 가격이 오르면 코스트코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이것만 봐도 요즘 달걀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죠.”

미국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이정환 씨(31)는 최근 미국 대형마트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그는 “마트에서도 팔 수 있는 달걀 물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한 사람당 두 팩까지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동네도 사정은 비슷하다. 뉴욕주에 사는 박모 씨는 “근처 마트에 가면 매대에 ‘달걀 가격이 급등한 것을 이해해달라’는 문구가 붙어있다”며 “상대적으로 값싼 달걀은 이른 아침부터 모조리 팔려서, 저녁에 가면 값비싼 달걀만 남아있다”고 했다.

'관세 전쟁' 트럼프도 달걀만큼은 'HELP ME'

미국에서 ‘달걀의 난’이 벌어지고 있다. 16일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미국에서 달걀 12개 가격은 6.85달러로 조사됐다. 원화로 환산하면 1만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계란 가격은 1년 전보다 58.8%, 전월과 비교하면 10.4% 올랐다.

이마저도 최고점을 찍은 2주 전(8.15달러)보다는 그나마 떨어진 가격이다. 그러나 여전히 계란 한 알이 828원(원·달러 환율 1450원 적용)으로 1000원에 육박하다 보니 미국 소비자들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아우성친다. 미 농무부는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안정세를 찾았다”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은 “부활절을 앞두고 달걀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해외 국가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치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달걀만큼은 손을 벌리기 바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세계 2위 달걀 수출국인 폴란드를 포함해 프랑스, 인도네시아의 가금류 단체들이 미국 농무부와 현지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계란을 수출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다. 튀르키예 계란 생산업자들은 올 7월까지 미국에 달걀 1만5000t을 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 계란 가격을 잡을 수 있는지를 두고 의문의 목소리가 많다. 계란은 수출 과정에서 파손되기 쉽다. '달걀을 한바구니 담지 말라'는 격언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 의미다. 수출 요청을 받은 외국도 ‘계란을 나눠줄 여유’가 없다. 지난 13일 블룸버그 통신은 유럽연합(EU) 내 계란 도매가격이 100㎏당 268.48유로(약 42만5000원)로, 작년 12월 말보다 12% 올랐다고 보도했다. 이는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계란 외교’를 넘어 내부적으로 ‘달걀과의 전쟁’에 나섰다. 이 ‘전쟁’엔 대통령도 장관도 ‘총출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달걀 가격 안정을 위해 2조1800억원 규모의 대책을 내놨다. 올해 한국 정부의 ‘비상금’인 예비비 규모(2조4000억원)와 맞먹는 규모다. 트럼프 행정부는 질병 연구와 백신 개발에만 약 1453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식료품값 인하’였던 만큼 집권 초기 달걀 가격 폭등이 더더욱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회 연설에서 “달걀값은 손 쓸 수가 없다”고 토로하면서도 이전 정권인 조 바이든 행정부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브룩 롤린스 미 농무부 장관은 아예 자국민들에게 “뒷마당에서 직접 닭을 키우라”고 제안했다. 장관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달걀을 직접 생산하라”고 권유할 만큼 사정이 급박한 것이다. 롤린스 장관은 지난 2일 폭스 방송 ‘폭스 앤드 프렌즈 위켄드’에 출연해 “사람들이 ‘어쩌면 내 뒷마당에서 닭을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며 자신도 뒷마당에서 닭을 키우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지난달 26일에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각 가정의 뒷마당에서 닭을 키우기 쉽게 만들겠다”고 썼다.

4년전 1700만마리 묻었던 한국, 3년 연속 '300만마리' 방어

한국은 어떨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특란 30구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6552원이다. 포장비용을 생략하고 단순 계산하면 계란 한 알에 218원. 미국의 ‘반의반 값’이다.

미국과 한국의 계란 가격을 가른 원인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를 꼽는 이들이 많다. AI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는 조류의 급성 전염병이다. AI에 걸린 닭은 사료 섭취량이 줄면서 침울하거나 졸다가 급격하게 폐사한다. 죽기 직전에 벼슬이나 다리에 청색증이 관찰되기도 한다. 산란계에서는 산란 저하가 나타나기 전에 먼저 폐사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고병원성 AI는 세계동물 보건기구(WOAH)에서도 관리 대상 질병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고병원성 AI는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된다.

미국에서 계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은 AI 방역에 실패해서다. 미 정부는 AI가 빠르게 확산하자 산란계를 대규모 살처분했다. AI가 발발한 2022년 이후 미국에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1억4800만마리에 달한다. 특히 최근 AI 확산세가 빨라지면서 살처분도 더 빠르게, 더 크게 이뤄졌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살처분된 산란계만 1320만마리에 달한다. 올 2월 기준 4개월간 미국에서 폐사된 산란계는 약 4600만마리다. 미국 전체 산란계 사육 규모(3억400만마리)의 15%가 4개월 만에 사라진 것이다.

예찰 검사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 여주시의 한 산란계 농장 주변에서 지난 1월 6일 오전 관계자가 출입하는 차량 방역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예찰 검사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 여주시의 한 산란계 농장 주변에서 지난 1월 6일 오전 관계자가 출입하는 차량 방역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반면 한국은 AI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9일 강원 동해 산란계 농장을 시작으로 이날까지 산란계 기준 총 14건의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2024~2025년 산란계 살처분 규모는 총 280만수다. 이는 최근 10년 중 두 번째로 적은 규모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이번까지 세 시즌 연속으로 산란계 살처분 규모를 300만수 미만으로 막았다”며 “올해 고병원성 AI에 따른 산란계 살처분 수는 전체 산란계(8067만마리)의 3.4%에 불과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2021년 겨울부터 국내 산란계 살처분 규모는 △2021~2022년 441만수 △2022~2023년 286만수 △2023~2024년 267만수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물론 한국도 AI 방역의 ‘흑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6~2017년 국내 산란계 살처분 규모는 2518만수에 달했다. 이듬해인 2017~2018년엔 456만수로 잠잠했다가 다시 2020~2021년 방역에 빈틈이 생기면서 무려 1696만수의 산란계가 살처분됐다.

알을 낳아줄 닭이 없어지다보니 달걀값도 조용할리 만무했다. 한국은 2500만마리가 넘는 산란계를 살처분했던 2017년 1월 계란값을 잡겠다며 ‘무관세 수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형식은 ‘관세 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산 물량을 값싸게 들여와 국내 달걀 가격을 잡겠다는 의도였다. 1700만마리의 산란계를 집단으로 살처분한 직후였던 2017년 말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 미국산 신선란 3000만개를 긴급 수입하기도 했다. 그해 초 산란계를 대량 살처분하면서 계란값이 큰 폭으로 오를 때 ‘연간’ 계획해놨던 물량인데, 이후 국내 계란 수급이 안정을 찾자 수입을 잠정 보류했다 연말에 다시 계란값이 들썩일 조짐을 보이자 들여온 것이다.

'반의반 값' 한국산 달걀, 사상 처음으로 미국行

반복되는 ‘AI 발(發) 살처분’을 막기 위해 정부는 모든 농장을 똑같이 방역하는 대신 위험 지역에 집중하는 ‘선별식 방역’을 시작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과장급의 ‘특별방역지원단’을 현장에 파견하고, 통제초소도 확대했다. 고병원성 AI 발생 지역의 가금 검사 주기도 단축했다. 특히 고병원성 AI를 조기에 검출하기 위한 노력도 성과를 거뒀다. 가금농장의 일제 검사와 발생지역 검사 주기를 단축한 결과, 검사를 통한 발생농장 검출률이 2022~2023년 30.7%(총 75건 중 23건)에서 2023~2024년 34.4%(총 32건 중 11건), 2024~2025년 40.5%(총 37건 중 15건)로 높아졌다. 고병원성 AI 발생을 빠르게 진단하면서 폐사 규모도 줄이고, 계란 공급도 안정적으로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달걀을 고르는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달걀을 고르는 모습. 뉴스1

농식품부는 산란계를 10만마리 이상 키우는 사육 농장과 산란계 밀집단지에 대해 검역본부·지방자치단체 합동 전담관을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계열사별로 자체 방역 관리계획을 마련토록 했다. 고병원성 AI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의 오리 농가는 사전에 ‘사육 제한’을 명령하는 특단의 조치도 시행하고 있다.

방역 성과가 엇갈리다보니 최근엔 모처럼 보기 드문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달걀 파동’ 때마다 미국에 “계란 좀 달라”며 손을 벌렸던 한국이 이제는 역으로 미국에 계란을 '원조' 하게 됐다. 충남 아산시에 따르면 지난 7일 농업회사법인 계림농장은 특란 20t(1만1172판·33만5160알)을 미국 동부 조지아주로 수출하기로 했다. 미국이 계란 공급 부족을 해소하려면 앞으로 한두 달 안에 7000만~1억개의 계란을 수입해야 하는 만큼 물량이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생산한 계란이 미국에 수출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