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점에 박영근 화백이 그린 8호 유화
카뮈·헤밍웨이와 어깨 나란히
박 화백 ”‘흰’ ‘바람이분다, 가라’에서 영감
치과용 드릴로 바람결 표현
현재의 모습 담길 원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초상화가 10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점에 걸렸다. 박영근 화백(성신여대 서양화과 교수)이 한달 반 동안 그린 작품으로 활짝 웃는 작가의 현재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엽서 크기 여덟 장을 모은 유화 8호 크기다.
한강 얼굴이 걸린 자리는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10년간 빈 채로 남겨둔 곳이다. 광화문점과 세종로 지하보도를 잇는 출입구 통로에 마련된 상설 전시공간으로, 알베르 카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김대중 등 노벨문학상∙물리학상∙평화상 등 각 부문 수상자들의 초상화 22점이 걸려 있던 자리다.
화업 36년을 자랑하는 박영근 화백은 2014년 당시에도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아인슈타인 등 노벨상 작가들을 그린 작가다. 그는 한강 소설의 ‘흰’과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고 밝혔다.
“한강이 ‘흰’이라는 소설에서 삶과 죽음이 실타래처럼 엮어지는 것으로 표현했더라. 제가 유화물감이 마르기 전이나 마른 후에 치과용 드릴로 자국을 내는데 그것이 실이 풀린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처럼 바람결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한강 작가의 얼굴 중앙에서 바깥으로 바람의 자국이 펼쳐나가게끔 표현했다.”
그는 실제 한강 작가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담은 7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는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한강 측의 승인을 받았는데, 아마도 현재의 자신과 닮은 초상을 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담스러웠지만 뿌듯한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한강 소설에서 미술가들의 묘사가 정교하고 빼어나다고 감탄했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서 사진작가, 조각가도 나오고 동양화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굉장히 섬세하다. 이합지라든지 먹의 번짐의 정도라든지 직접 그림을 그리셨던 분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섬세한 감각과 철학적 사유에 감동을 받았다.”
교보문고는 “노벨상 수상자 전시 공간은 클래식한 우드톤 인테리어에 다크 그린 컬러로 포인트를 주어 124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의 헤리티지를 깊이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 공간의 재단장은 아시아 여성작가로서 최초이자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내 문학의 위상을 높인 한강 작가를 계기로 약 10년 만에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교보생명이 출연한 대산문화재단은 오랫동안 한국 문학의 번역 및 해외 출간을 지원해 왔으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역 출판을 지원해 2016년 부커상을 받는 데도 기여했다. 대산문화재단은 신용호 창립자가 1992년 설립했으며, 그의 아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가 재단 이사장을 맡아 30년 넘게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