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로 한숨 돌리는 듯했던 글로벌 기업들이 이번엔 환급 지연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더디고 복잡한 환급 절차로 자금난에 빠지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영세 기업은 파산 위기에 처했다.
◇ 관세 환급 소송 ‘급물살’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기준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3000건이 넘는 관세 환급 소송이 제기됐다. 소송이 급증한 건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구두변론을 진행하며 트럼프 관세에 회의적 태도를 보인 후부터다. 지난 2월 20일 미국 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된 수입 관세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뿐만 아니라 펜타닐 밀수 방조를 이유로 캐나다, 중국, 멕시코에 부과한 관세도 포함된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관세를 환급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소송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펜실베이니아대 ‘펜와튼 예산 모델’(PWBM)을 인용해 상호관세 위법 판결에 따른 환급 요구액이 17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관세 비용을 지불했다. 지난해 4월 이후 수입업체 약 33만 곳이 수입 물품 총 5300만 건에 대해 관세를 납부했다. 골드만삭스는 IEEPA에 근거한 관세로 기업들이 낸 금액이 180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정부 징수액이 됐다. 개별 기업 사례를 보면 액수가 더 크다. 나이키는 연간 관세 부담이 15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혔고, 애플은 최근 세 분기 동안 30억달러 이상을 납부했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주요 자동차 업체도 수십억달러의 비용 부담을 호소했다.
대기업들도 환급 소송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코스트코, CVS, 닌텐도, 판도라주얼리, 하스브로, 스케처스 미국 법인, 닛산 북미 법인 등이 잇따라 소송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에 소송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자금 압박이 큰 중소·영세기업의 절박함은 더하다. 미국 고급 필기구 온라인 판매업체 엔드리스펜스의 대표 케발 칸타리아는 “지난 1년간 수입 상품에 부과된 추가 관세 17만5000달러를 7월까지 환급받지 못하면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 “환급 장벽 못 넘어”
하지만 환급 절차가 어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는 기업도 많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환급 문제를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절차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과 CIT에 맡겨졌다. 기업들은 잘못 부과된 관세를 직접 계산한 뒤 품목별 금액을 제출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오하이오주의 한 기업 대표는 “아무도 환급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환급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신청해야 하지만 환급 대상 33만 개 기업 가운데 준비를 마친 곳은 10% 미만”이라며 “실제 환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청을 마쳐도 환급 시점과 방식, 심지어 환급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연방정부가 관세 환급을 꺼려하고 있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환급 청구권을 투자자에게 매각하려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리처드 케셀하우트는 22만달러 상당의 청구권 매각을 검토했지만 투자 회사들은 1달러당 15~30센트만 제시했다. WSJ는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환급이 결정되더라도 실제 지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법무법인 데처트의 스티브 엔겔은 “규모와 범위가 워낙 방대해 행정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세 비용의 상당 부분이 이미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점 역시 논쟁 거리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관세 비용의 약 60%는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이에 따라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와 JB 프리츠커 일리노이주지사 등은 환급금이 기업이 아니라 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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