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다음 날 삿포로 간 공무원들…"얼마 썼는지도 몰라" [혈세 누수 탐지기㉔]

1 day ago 4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뉴스1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뉴스1

지난해 12.3 계엄 다음날 많은 국민들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지역사회 공무원들은 외유성 해외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최근 공무원 해외 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일 정도로 많았고, 계속 나라가 비상 상황인데도 여전히 일부 공무원들의 외유성 출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은 작년에도 여러 차례 공무원의 외유성 출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나라와 국민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오히려 여행을 즐기고 오는 일부 공무원들의 최근 실태를 혈누탐팀이 살펴봤습니다.

◇ 외유성 출장 다녀왔는데 "아직 우리도 비용 정확히 몰라"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지난해 12월 4일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약 2주간 해외 출장을 다녀온 공무원의 해외 출장 보고서만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200건이 훌쩍 넘게 등록됐습니다. 외교활동, 국제회의 참석을 제외한 시찰, 견학, 자료수집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 출장만 추린 결과입니다. 모든 공무원들은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이 시스템에 출장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습니다. 공무원 해외 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예정된 해외 출장을 취소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취소하면 발생할 수수료도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내용이 '압권'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외유성 출장으로 다녀왔어도, 나라가 비상사태일 때 다녀왔으면 최소한 나랏일에 도움이 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남습니다. 하지만 강원 정선군과 전남 구례군 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계엄이 바로 해제되긴 했으나 여전히 나라가 혼란스러운 지난해 12월 4일, 정선군에서는 12여명의 공무원이 일본 후쿠오카 삿포로로 4박 5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목적은 '인구 소멸 대응을 위한 일본 선진 사례 시찰 해외 연수'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연수 코스가 도야 호수, 니세코 후키다시 공원, 흰수염 폭포 등 관광코스로만 구성됐습니다. 보고서에는 첨부된 사진은 다 깨져있었고,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도 쓰여있지 않았습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공무원들의 '일본 선진사례 시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모습 중 일부. 보고서 내 사진 다수가 깨져 있어 구체적 정보 확인이 어렵다. /사진=정선군 일본 선진사례 시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캡처.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공무원들의 '일본 선진사례 시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모습 중 일부. 보고서 내 사진 다수가 깨져 있어 구체적 정보 확인이 어렵다. /사진=정선군 일본 선진사례 시찰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캡처.

국민이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공개된 해당 해외 출장의 보고서는 사진처럼 흐릿하게 캡처된 사진이 첨부됐습니다. 이렇게 실체를 알 수 없는 사진만 총 6장이 포함됐습니다. 마치 보고서를 보는 사람을 우롱하는 듯한 인상까지 줍니다.

'지역 소멸 대응'과 관련된 내용으로는 히가시카와쵸 마을에 대해 "공항과 가까운 편리한 위치로 사람들이 방문하기 편하고, 사진이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각종 행사와 기획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도만 조사됐습니다. 이마저도 과연 인구 소멸 대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정선군에 연락을 해보니 깨진 사진에 대해선 "내부 결재에서는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민들이 보는 보고서가 중요한 게 아니냐"고 물으니 "맞다"고 했습니다. 소요된 비용에 대해선 "1인당 160만원 정도지만 여행사와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어서 아직 정확하지 않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예산 관련 문서도 없답니다. "왜 이렇게 출장을 다녀왔냐"는 물음에는 "정선이 자연 환경이 강점이다 보니 이와 관련해 볼 수 있는 곳이 삿포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물음표가 해소되지 않는 답변을 전했습니다.

◇ 나라 비상이지만 참을 수 없었던 '포상'

전남 구례읍은 '주민자치위원회 문화탐방 체험 결과'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2월 4일부터 주민자치위원 18명, 공무원 2명이 4박 5일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목적에는 '베트남 특유의 느긋함 속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휴식을 제공함으로써 위원회의 결속력 강화'라고 명시했습니다. 출장 보고서에는 다녀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고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찍은 사진 3장이 전부였습니다.

구례읍에 문의해보니 함께 여행을 다녀온 공무원 2명 중 1명은 휴가고, 나머지 1명은 퇴직했답니다. 사실상 한 달 뒤 퇴직할 사람에게 준 '선물' 같은 출장이었던 것입니다. 구례읍 관계자는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부산 남구에서는 공무원 1명이 12월 5일부터 14일까지 무려 7박 10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와 몰타를 '구정발전기여 장기근속 모범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다녀왔습니다. 보고서 말미에 출장 소감에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내 마음속 지중해의 시칠리아와 몰타를 공직 생활 마감을 앞두고 방문하게 돼 설레고 기뻤다"며 "휴직 한번 없이 열심히 다니기는 했지만 내가 남구를 위해 뭘 그리했냐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는 '감상'이 포함됐습니다.

같은 달 5일부터 9일까지 3박 5일로 '모범이장 국외 선진지 견학 인솔' 차원에서 대만을 다녀온 전남 함평도 출장 보고서도 기가 찹니다. 관광코스로만 짜여 있는 보고서의 시사점 및 특이사항에는 "한 기념관에서 예쁜 그림이 그려진 원판을 보았는데 다름 아닌 칼라 맨홀뚜껑이었다"며 "칙칙하고 재미있을 것 없는 길바닥에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시사점이고 특이사항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의 연속이었습니다.

◇ "양심 있는 사람만 피곤"

아주 최근에는 어땠을까. 1~2월 다녀온 공무원 해외출장은 1372건에 달합니다. 전년 같은 기간 1452건과 비교해 비슷한 수준입니다. 아직 1~2월 보고서가 모두 등록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작년보다 더 많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공무원 해외 출장이 외유성 출장은 아닙니다. 나라가 비상 상황일 때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 우리에게 없는 해외 선진 사례를 계속 발굴해 나라와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일은 필요한 일입니다. 실제 중앙행정기관에서 다녀온 해외 출장 대부분은 정책 조사를 위한 출장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나 이 시국에도 '우수직원 해외연수', '장기근속 모범공무원 공무국외출장' 등으로 '포상성'으로 해외로 다녀오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출장이 이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공직사회의 현실입니다. 한 지역사회 공무원은 "왜 부적절한 현상이 계속되는지에 대한 정답은 간단하다"면서 "처벌이 미미한데, 모두가 한배를 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부도 이런 외유성 출장을 지양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1월부터 지방의회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안을 개정해 사전검토 절차 등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앞서 혈누탐팀이 언급한 지자체 일반 공무원의 외유성 출장을 방지할 수 있을 만한 시스템 개선은 이뤄진 게 없어 '반쪽짜리 권고'에 그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다른 지역사회 공무원은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보는 눈이 없어 폐해가 심한 곳이 많다"면서 "투명성, 일관성, 처벌의 강화 등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저 양심 있는 사람만 더 피곤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계속 안락한 게 이 바닥"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신현보/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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