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본격적인 가을을 앞두고 등산을 계획하는 사람도 늘고 있지만 기온 변화가 심한 가을철에는 혈압, 혈당 등 건강 지표가 불안정해지기 쉬워 만성질환자와 노인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소방청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2022~2024년)간 산악 사고로 발생한 구조 활동 건수는 총 3만1330건에 달했다. 특히 가을철인 10월에는 처리 건수 대비 인명 피해 비율이 14.3%로 다른 시기보다 크게 높았다.
◇ 만성질환자·노인, 산행 전 건강 점검 필수
소방청은 “단풍 등 볼거리가 풍부한 시기에 평소 산행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 준비운동을 소홀히 하거나 몸 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무리하게 산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등산 전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자신의 건강 상태다. 평소 고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이나 협심증 같은 심혈관질환, 천식·알레르기를 앓고 있다면 복용 중인 약물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특히 당뇨 환자는 저혈당 예방을 위해 간식과 물, 전해질 음료를 준비하고 공복 혈당이 300㎎/dL 이상이면 등산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식사 또는 인슐린 투여 1시간 후에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다면 산책으로 대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혈관질환자는 평소 가벼운 조깅이 가능한 때만 산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온 변화에 대비해 얇은 옷을 겹쳐 입고 땀 배출이 잘되는 기능성 소재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이규배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새벽이나 고지대에서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혈관이 수축해 체온 조절이 어렵고 심장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특히 65세 이상 노인 환자는 체온 조절 능력이 저하된 경우가 있을 수 있어 급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주의해야 한다. 심혈관질환 병력 및 흡연력이 있다면 저강도의 짧은 코스를 선택하고, 혼자보다는 일행과 함께 이동하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 물은 자주, 술·카페인은 금물
등산 중에는 갈증을 느끼기 전부터 수분을 조금씩 자주 보충하는 것이 좋다. 갈증은 이미 탈수 초기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해질 음료를 마시는 것도 손실되는 나트륨과 칼륨을 보충할 수 있어 탈수 예방을 돕는다.
쌀쌀해진 날씨에 추위를 이기기 위해 산행 중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알코올은 이뇨 작용을 촉진해 체내 수분을 더 빨리 배출시킨다. 또 균형감각을 떨어뜨려 산행 전후로는 알코올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페인이 든 커피, 녹차도 탈수를 촉진할 수 있어 마시지 말아야 한다.
등산은 칼로리 소모가 큰 운동이다. 한 번 산을 오르면 하산까지 최소 2~3시간은 움직여야 하므로 체력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간식을 중간에 섭취해주는 것이 좋다. 초콜릿, 에너지바처럼 흡수가 빠른 간식은 체력 저하와 저혈당 증상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응급 신호 간과하지 말아야
등산 중 가슴 통증이 5분 이상 지속되거나 극심한 두통, 시야 흐림, 식은땀과 함께 어지럼증이 나타난다면 심장이나 뇌혈관질환의 전조 증상일 수 있어 즉각적인 의료 조치가 필요하다.
한쪽 팔이나 다리에 갑작스럽게 힘이 빠지는 증상 역시 뇌혈관질환 신호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증상은 잠시 사라진다고 해서 원인이 해결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반드시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받아야 한다. 산행 도중 나타나는 급성 심혈관질환이나 뇌졸중은 신속한 대응 여부가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에 초기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저질환이 없더라도 평소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은 산행 중 심폐 기능과 근골격계에 큰 부담을 받을 수 있다. 급격한 오르막길이나 장시간 하산 과정에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무릎, 발목 등 관절에 무리가 가해지면서 부상 위험이 커진다. 이 교수는 “자신의 체력과 건강 상태를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강도와 코스를 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등산 중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하산을 시도하기보다 안전한 장소에 앉아 증상이 안정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위급한 상황이라면 즉시 119로 신고한다. 주변에서 국가지점번호 및 소방서 위치표지판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면 전달해주는 것도 좋다. 등산 관련 앱을 활용하면 이동한 경로를 확인할 수 있어 길을 잃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