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리는 화가'... 현대미술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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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바젤리츠. 타데우스 로팍 제공

게오르그 바젤리츠. 타데우스 로팍 제공

전후(戰後)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가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 ‘뒤집어진 그림’으로 잘 알려진 그는 1938년 나치 치하의 독일 작센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이던 1945년 그는 드레스덴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광경을 목격했다. 훗날 바젤리츠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무너진 질서, 무너진 풍경, 무너진 민족, 무너진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 이때의 기억이 그를 평생 일그러진 몸과 폐허의 풍경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1963년 베를린에서 연 첫 개인전은 전설이 됐다. 당시 세계 미술의 주류는 추상이었다. 폴록의 흩뿌린 물감, 마크 로스코의 색면, 빌렘 데 쿠닝의 격렬한 붓질이 ‘진보적 미술’로 통했다. 하지만 바젤리츠는 반대로 뒤틀린 형상의 구상화를 그렸다. 독일 당국은 개인전에 나온 작품 중 ‘배수구로 빠진 위대한 밤’과 ‘벌거벗은 남자’를 외설 혐의로 압수했다. 관람객들은 충격받았지만, 미술계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그리는 대신 화가의 감정과 내면을 거친 색과 일그러진 형태로 쏟아내는, 독일의 표현주의 전통을 바젤리츠가 다시 무대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The Heroes.

The Heroes.

그의 1965~66년 ‘영웅(Heroes)’ 연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폐허 위에 어정쩡하게 선 거인의 군복은 너덜거리고, 표정은 멍하다. 발치에는 깃발이 쓰러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업보를 잊고 싶어 하던 독일 사회를 향해 “당신들이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저질렀는지 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1969년 그는 캔버스를 거꾸로 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의 주제나 줄거리 대신 ‘그림 그 자체’를 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사람을 그린 그림이 똑바로 걸려 있으면 사람들은 쓱 본 뒤 ‘아, 사람이네’ 생각하고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거꾸로 걸면 무엇을 그렸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그렸나’ 뿐 아니라 ‘어떻게 그렸나’, 즉 화가가 고른 색과 휘두른 붓질에도 시선이 머물 수 있다. 그렇게 뒤집어진 그림은 바젤리츠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The Heroes.

The Heroes.

The Painter in His Bed.

The Painter in His Bed.

1980년대 그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로 세계 미술계의 중심에 섰다. 1970년대까지 미술계의 중심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었다. ‘화가가 감정을 담아 인물을 그린다’는 행위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바젤리츠는 거친 붓질, 일그러진 인체, 강한 색채로 ‘그린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는 현대 사회에도 회화의 의미와 가치가 여전하다는 증명이었다. 그 뒤로 안젤름 키퍼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합류하면서 신표현주의는 당대 세계 미술계의 가장 강력한 조류가 됐다.

말년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거동이 어려워진 뒤에도 매일 화실로 나갔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퐁피두센터, 모건라이브러리, 뭉크미술관이 잇따라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줬다. 시장도 따라왔다. 그의 대표작들은 수십억원대에 거래된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작품들은 우리 곁에 있다. 오는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섬에서는 그의 신작 회화 시리즈 ‘에로이 도로(황금빛 영웅들)’가 공개된다. 국내에서는 오는 8월 세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각각 예정돼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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