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통제 '부메랑'…산업용 전기료 3년간 70% 오르자 대기업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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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업계에선 한국전력 판매가가 도매시장 가격보다 높은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석유화학·철강사 등을 중심으로 ‘전력시장 직접구매제’에 참여하는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직접구매제를 활용할 수 있는 대규모 전력 사용 기업은 500여 곳이다. 전체 전력 소비자의 0.002%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쓰는 전기량은 전체의 29%에 달한다. 이들 대기업이 한전과 거래를 끊으면 한전 재무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전력업계 전문가는 “대기업들이 이탈한 뒤에는 나머지 기업과 일반 가정의 전기요금을 더 올려 받는 ‘교차 보조’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기료 방패막이 담당한 한전

가격통제 '부메랑'…산업용 전기료 3년간 70% 오르자 대기업 이탈

23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연료 가격이 급등한 2022~2023년 전력 도매가격(계통한계가격·SMP) 평균은 킬로와트시(㎾h)당 181.9원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 상승과 서민 부담 등을 이유로 전기료 인상을 억제해 한전의 산업용 평균 전기요금은 ㎾h당 136.2원에 불과했다. 그 차액(45.7원)은 오롯이 한전이 부담했다. 2년간 한전 산업용 전기 판매량이 587테라와트시(TWh)인 점을 고려하면 한전이 본 손실은 27조원에 달한다.

견디다 못한 한전은 2023년부터 산업용 전기료를 대폭 인상했다. ‘국민 수용성’을 이유로 주택용 전기요금은 놔둔 채 산업용만 지난 2년간 네 차례에 걸쳐 총 38%가량 높였다. 치솟은 전기료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SK어드밴스드가 지난해 말 전력거래소에 처음으로 직접구매 의사를 타진한 배경이다.

전력거래소는 20여 년간 잠자고 있던 직접구매제도를 되살리기 위해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가 이를 의결해 기업이 제도를 활용할 길이 열렸다. 대신 정부는 기업들이 한전 소매가격과 도매가격을 비교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허들’을 마련했다. 직구제 계약유지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고, 계약기간 내 한전 소매 고객으로 복귀하면 9년간 다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가정용과 형평성 논란 불가피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시장에서 전기 가격과 구매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직접구매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가격을 억눌렀던 정부가 한전의 재정난을 해소할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대기업의 ‘탈(脫)한전’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작년 말 산업용 전기료만 인상하면서 “러시아 사태 당시 에너지 가격 급등을 한전이 떠안았는데, 그때 대기업이 빚진 것을 환원한다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대기업의 한전 이탈을 허용해준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과 같이 직구제가 운영되면 한전을 빠져나갈 수 있는 대기업과 선택권이 없는 중소기업 및 가정용 소비자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남은 소비자들이 더 가파른 전기요금 인상을 감당해야 해서다. 이 경우 국민의 전기료 인상 수용성이 떨어져 첨단산업을 위한 전력설비 투자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전력업계는 우려한다.

정부와 국회는 2022년 자금난에 처한 한전의 채권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에서 5배로 대폭 상향했다. 하지만 이는 2027년이면 일몰되는 한시적 조치다. 한전은 2027년 말까지 채권 발행 잔액을 지금보다 40조원 이상 줄여야 한다.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진다는 의미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직접구매제도가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한전 등 판매사업자가 요금 결정 권한을 갖고 연료비 변동을 전기요금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력직접구매제도

3만kVA(30㎿) 이상의 수전설비를 갖춘 대용량 전력 사용자가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기를 사다 쓸 수 있게 한 제도. 2001년 전력시장 구조개편 당시 판매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정부의 가격 규제로 사실상 사문화했다.

김리안/김대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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