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2015년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월요일에는 오후 1시에 출근하는 제도였다. 그러다가 2017년엔 아예 주 35시간제, 2022년부터는 주 32시간제를 실시하고 있다. 개발자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결국 절대 근로시간이 부족해 연장근로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근로 시간은 사실상 주 5일제로 회귀했고, 회사 인건비 부담만 급증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보수 정당마저 선심성 정책”
국민의힘이 14일 ‘주 4.5일제 도입’을 대선 공약로 내놓으면서 근무 시간 단축이 다시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총 근무시간이 줄지 않는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단 주4일제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주 4일제, 주 4.5일제는 근로시간은 줄이지만 받는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라며 “근로시간을 줄이면 받는 급여도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라는 비판에 대해 민주당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권 위원장은 또 반도체를 포함해 조선,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집중 근로가 필요한 산업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도 폐지해 기업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보수 정당마저 선심성 공약 경쟁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당 내에서도 나온다. “민주당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11시간 연속 휴식 제도 등 유연 근로 확산을 막는 기업 규제는 그대로 두고, 근로 일수만 줄이는 듯한 정책을 펴는 것은 미봉책”이라고 지적했다.
◇총 근무시간 변동 없다지만…
권 위원장은 이날 주4.5일제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정원의 25% 범위 내에서 직원들이 순환 방식으로 주 4.5일제를 이용하는 울산 중구청의 사례를 소개했다. 하지만 공공성이 강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은 다르다는게 재계의 입장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1시간 더 일한다고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사례처럼 근로자들의 연장근로가 늘어나면서 인건비 부담만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다.
선거 과정에서 주4.5일제의 성격이 더욱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결국 민주당의 주장 대로 임금 감소 없는 주4.5일제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근로시간에 비례해 보상이 커지는 현행 임금체계 아래서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결국 생산비용(인건비) 증가를 부르고 상품·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투입되는 근로시간이 감소한다면 노동 생산성이 낮아져 기업의 경쟁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일하는 방식을 개편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경직된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여당의 정책은 주52시간을 폐지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며 “특정 주에는 근로시간 제한 없이 길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조삼모사 정책으로, 여당이 추진한 반도체법 특별연장근로 확대와 다를게 없다”고 말했다. 실근로시간 축소라는 주4.5일제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결국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근로시간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기 보다 업종·근무 특성 등에 따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 등 임금 보전 방안이나 산업별 업무 형태를 고려하지 않은 주4.5일제 도입은 되레 국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이 자율적으로 유연·탄력근로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정소람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