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영화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5년 베트남 영화 산업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영화 시장은 2022년에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향후 8년간 연평균 10% 내외의 고성장이 전망된다. 이에 발맞춰 국내 영화사들 또한 현지 시장에 대한 투자·배급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귀목: 피의 혼례’ 역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지난달 12일 베트남 개봉한 뒤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이 작품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현지 배급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는 19세기 베트남이 배경으로, 주인공 ‘나이’가 부유한 가문의 둘째 며느리로 들어가 맞닥뜨리는 섬뜩한 사건들을 다룬 오컬트 호러물이다.
연출을 맡은 레 반 끼엣 감독(Le Van Kiet·47)은 베트남 영화의 세계화를 이끄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의 전작 ‘퓨리’(2019년)는 제92회 아카데미 최우수 국제장편영화 부문 베트남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 장편 영화 작업에 한창이다. 최근 BIFF 현장에서 그를 만나 현재 베트남 영화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베트남 영화 시장은 역대 최고 매출액(1억8077만 달러)을 기록했습니다. ‘전성기’라고 봐도 될까요.
“지금 베트남은 그야말로 창작 르네상스 시기입니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더 대담해지고, 기술 장벽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성장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죠. 이런 흐름을 초창기부터 함께 할 수 있어 특권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에도 영화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베트남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습니다. 그리고 영화관은 그 돌파구가 됐습니다. 특히 관객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로컬 영화’에 대한 지지가 컸죠. 이에 감독들은 스토리텔링에서 더 과감해지고 있고, 관객들 또한 그 강렬함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또한 베트남 고대 혼례 의식 등 현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과 적대 관계에 있는 ‘목신(木神)’은 실제 베트남 전통 설화에도 등장하나요.
“목신(木神)은 수 세기 동안 베트남 민속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존재죠. 이번 영화에서는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하되, 사악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존재처럼 목신을 설계했습니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것 또한 베트남 영화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시대라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입니다. 원작의 어떤 점이 특히 끌리셨나요.
“원작을 보며 제 할머니가 시골에서 신부가 됐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곧바로 그 인물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출산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와 모성애를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주제를 공포 장르로 풀어내셨나요.
“주인공 ‘나이’가 거의 가축처럼 취급되는 사회에 대한 공포를 관객이 뼈저리게 느끼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점점 강해지는 과정을 목격하길 바랐습니다.”
-2014년 ‘온순한 여인’으로 BIFF에 초청되신 적이 있습니다. 약 10년 만에 다시 BIFF에 초청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온순한 여인’은 제 연출 인생에서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그와 동시에 BIFF를 경험한 건 정말 비현실적인 일이었죠. 이번에 다시 BIFF의 ‘미드나잇 패션’ 섹션으로 돌아오게 된 건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가려 했던 제 영화 여정의 결과 같습니다.”
-감독님은 할리우드에도 진출하셨는데요. 향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현재 할리우드 프로듀서들과 함께 몇 편의 장편을 개발 중입니다. 올해 캐스팅을 시작해 프로젝트를 본격 진행하려 합니다.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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