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이전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 등을 '비관세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 한국 항목에서 "한국 정부는 국방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 및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 가치가 1000만 달러(약 147억원)를 초과할 경우 외국 계약자에게 절충교역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절충교역이란 외국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의 무기나 군수품, 용역 등을 구매할 때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이전이나 부품 제작·수출, 군수지원 등을 요구하는 조건부 교역 방식을 의미한다.
USTR의 주장은 미국 방산업체가 한국에 무기를 판매할 때 절충교역 지침 탓에 기술이전 등을 요구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한국의 절충교역에 대한 언급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는 2008년 한미 간 소고기 시장 개방 합의 때 한국이 30개월 미만 연령의 미국산 소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은 "과도기적 조치"라며 "16년간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연령대와 상관없이 소고기 패티, 육포, 소시지 등 가공된 소고기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 업계의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한국의 전자 상거래 및 디지털 무역 장벽, 투자 장벽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보고서는 해외 콘텐츠 공급자가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게 네트워크 망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다수의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됐다고 꼬집었다. 일부 한국의 ISP는 콘텐츠 공급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콘텐츠 제공업자들의 비용 납부는 한국 경쟁자를 이롭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망 사용료 부과 시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의 독과점이 강화돼 반(反)경쟁적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법안에 대해선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미국 대기업과 함께 2개의 한국 기업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다수의 다른 주요 한국기업과 다른 국가의 기업은 제외된다"며 문제 삼았다.
앞서 미국 상공회의소 등 미국 재계는 지난해 1월에 이어 지난해 말에도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추진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미국 업체가 주 타깃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 관련 구성요소(ERC) 규제에 대한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의 우려가 거듭 제기된다고도 알렸다.
제약 및 의료 기기 산업의 경우 한국의 가격 책정 및 변제 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안한 정책 변경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부족하다고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투자 관련 무역장벽으로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 출자 금지 △케이블·위성방송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육류 도매업 등에 대한 투자 제한 등을 거론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농업·생명공학 관련 한국의 규제 시스템을 지적하며 과도한 검토와 데이터 요구로 인해 새로운 바이오 기술 제품에 대한 허가 과정이 지연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화학물질 관리 관련 법률과 시행령에서 규정 집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고, 사업상 기밀 정보에 대한 보호도 부족하다며 꼬집었다.
보고서는 한국과 미국이 국제공통평가 기준 상호인정협정(CCRA)에 가입돼 있음에도 한국 국가정보원이 보안평가제도(SES)를 통해 사이버 보안 인증 요건을 추가로 부과하고 있다는 점, 한국 공공기관이 조달하는 네트워크 장비에 국정원이 인증한 암호화 기능을 포함하도록 요구하는 점 등을 거론했다.
특히 한국인터넷진흥원의 클라우드 보안 보증 프로그램(CSAP)에 대해 "한국의 공공부문에 진출하려는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에 상당한 장벽을 만든다"고 비판했다.
USTR은 매년 미국 수출업자가 직면한 무역장벽을 기재한 보고서를 이날까지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USTR이 이번 보고서에 지적한 한국의 무역장벽은 과거에도 자주 제기해온 사안이다. 하지만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일 각국 대미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감안한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무역장벽을 세운 국가에 그에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이에 따라 이번 보고서에서 지적된 사항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 여부 및 부과 시 세율에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목이 쏠린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현대 역사상 어떤 미국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만큼 미국 수출업체가 직면한 광범위하고 해로운 외국 무역 장벽을 인식하지 못했다"라며 "행정부는 이러한 불공정하고 상호적이지 않은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